아보카도에 관해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캘리포니아의 강아지 설이다. 어디서 들었더라.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보카도가 익을 즈음이 되면 거리에 떨어진 아보카도를 주워 먹고 강아지들이 통통하게 살이 찐다고. 강아지 몸매가 아보카도화 된다는 걸까. 생각만 해도 귀엽다.
밥을 먹을 때면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를 원그래프 그리듯이 머릿속에서 채워본다. 밥은 탄수화물, 고기는 단백질, 채소는 이따 저녁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아보카도는 대체 어떤 부분을 채웠다고 생각하면 좋을지 약간 곤란하다. 무려 과일이라는데 달지는 않고 탄수화물에 지방에 단백질까지 있으니까. 내 마음속에서는 아보카도가 멋대로 삶은 달걀과 버터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지방이니까 숲 속의 버터, 그리고 동글동글한 데다(그렇잖아) 아침식사에 어떻게든 어울리니까 달걀. 어쨌든 맛있고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보카도에게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숙성도를 알아보기 까다롭다는 것이다. '이때 먹어야지'의 이때에 적당히 잘 익은 아보카도를 갈라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이제는 약간 슈뢰딩거의 아보카도라고 생각하고 스릴 넘치게 즐기는 마음가짐을 장착했다. 원칙적으로는 꼭지를 떼어봐서 노란빛이 돌면 알 수 있는데, 이 꼭지라는 것을 붙였다 뗐다 하기도 곤란하고.. 거무스름해서 상했나!! 싶은데 속살은 생각보다 멀쩡할 때도 많다. 그래서 이제는 죄 없는 아보카도를 여럿 버리면서 선별한 브랜드와 지역을 믿고 산다. 그리고 먹기로 계획한 날짜보다 5일 정도 먼저 사서 매일 애지중지 만져보면서 후숙 한다.
그러니 잘 익은 아보카도를 만나면 만세! 신나서 일단 씨를 빼고 껍질째 손에 든 채로 격자 칼집을 슥슥 넣어서 꺼낸다. 그리고 먹는다. 그냥 밥 위에 얹기만 해도 맛있는 걸 뭐. 숟가락으로 둥글게 파내서 샐러드에 얹기도 하고, 정 모양이 엉망이라면 으깨서 과카몰리를 만든다. 도마 없이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또 마음에 든다.
하지만 유일하게 도마를 꺼내고 싶어 지는 아보카도 써는 법이 있으니, 아보카도 꽃이다. 아주아주 완벽하게, 검은 반점 한두 군데도 없이 노랗고 푸릇푸릇하게 익은 아보카도를 만나면 망설임 없이 도마를 꺼낸다. 그리고 일정하게 얇은 두께로 길게 저민다. 칼날은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쓱쓱 나간다. 그리고 트럼프 카드를 정리하듯이 파도처럼 앞뒤로 울렁울렁 휘면서 조금씩 펼친다. 같은 간격을 유지하려면 조금씩 펴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쪽이 낫다. 곧 둥근 무늬의 기다란 아보카도 리본이 된다. 그러면 끝 부분부터 시작해서 빈 곳 없이 고르게 돌돌 만다. 가늘게 시작할수록 예쁘게 잘 말린다. 이제 완성! 칼날을 밑에 들이밀어서 살짝 들어내 접시에 옮기자.
어디든 내도 좋지만, 비슷하게 얄프레하고 짭짤한 프로슈토와 함께 내면 한 겹씩 벗겨서 함께 먹기 좋다. 아보카도 꽃을 내면 사람들의 성격이 보인다. 어릴 적에 엄마가 가끔 롤케이크를 얼렸다가 한 조각씩 내어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포크로 돌돌 말린 방향을 따라 한 입씩 잘라내서 먹었다. 아마 혼자 온전히 한 조각을 소유한 것이 기뻐서였거나, 가끔 발동하는 강박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깨달았으니,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롤케이크나 바움쿠헨을 반드시 한 겹씩 벗겨서 먹어야 하는 사람(그렇다, 바움쿠헨도 어떻게든 한 겹씩 벗길 수 있다), 그리고 포크를 눕혀서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사람.
물론 꽃 모양으로 돌돌 말 정도면 아보카도는 아주 잘 익은 상태니 대충 뭉개 먹기에도 별 문제는 없다. 다만 관찰하는 재미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겹씩 벗기려는 사람과 조용히 마음속으로 동질감을 느낄 뿐이다.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