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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Apr 15. 2017

우유가 남아도는 날, 포크 인 밀크

우유도 물처럼 정수기에서 콸콸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우유도 물처럼 정수기에서 받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천지 제일 수요 예측하기 힘든 재료가 우유다. 넉넉하게 사두면 맘놓고 찔끔찔끔 쓰다가 툭하면 유통기한을 넘기고, 아까워서 조금씩 사면 금방 바닥나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 손이 떨린다. 이럴 거면 두 배로 사다 놓을 걸! 하지만 그랬다가는 다시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 유통기한을 애매하게 이삼일 넘긴 우유통을 들고 이 정도면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묘하게 짧은 우유의 유통기한과 하루에도 두세 번씩 바뀌어서 예측불허한 '이따 뭐 먹지'의 조화가 빚어낸 불행이다.


뭐, 없어서 못 쓸 때는 나가서 사오면 된다. 하지만 묵직한 플라스틱 병에 우유가 절반이나 남아있는데 유통기한이 간당간당 한다면? 벌컥벌컥 마셔 없애는 데도 한계가 있다. 멀쩡한 우유를 하수구에 콸콸 흘려붓다 보면 맨날 내다버리려고 장을 보는 건가 싶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간헐적으로 자괴감에 빠지느니 차라리 우유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있는 레시피를 쟁여두는 편이 낫다.


우유가 남아돌 때 만드는 레시피로 제일 자주 등장하는 것은 리코타 치즈다. 하지만 신선한 생치즈인 리코타는 마찬가지로 신선한 우유를 사용해 만드는 편이 낫다. 버리려면 그냥 버리지 굳이 애매한 품질의 치즈를 만들어서 기다렸다 버릴 필요는 없잖아. 그럴 때는 시원한 우유를 뜨거운 저녁식사에 초대해본다. 포크 인 밀크, 사실 이탈리아 요리니까 Maiale al latte , 즉 우유에 익힌 돼지고기 요리다.


고기를 덩어리째 요리할 때는 주로 호쾌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다. 소금도 후추도 향신료도 팍팍 뿌리고, 기름에서 김이 오르도록 달군 프라이팬에 제일 큰 집게로 들어 옮겨서 매캐하게 굽고, 통째로 식탁에 내서 칼로 저민다. 하지만 고기에 액체를 부어서 브레이즈를 할 때는 육수도 내고 맛내기 채소도 넣어야 하는 귀찮음이 수반되어 사람을 잘게 만든다. 다행히 포크 인 밀크는 덩어리 고기 요리지만 호쾌하기보다 귀엽고, 브레이즈지만 덜 귀찮다. 첫째로 우유를 좀 덜 부어도 푹 잠기도록 작은 냄비로 만들어서 아기자기고, 둘째로 육수를 낼 필요 없이 우유만 넣어도 풍미가 나니 간단하다.


다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으니 완성품의 외양이 매우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돼지고기 육즙의 미미한 산미가 우유의 카제인을 응고시키는데, 냄비와 돼지고기 곳곳에 들러붙어 뜨아한 형상이 된다. 성가시게도 이 부분이 맛은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야. 지방을 더 넣으면 응고를 막는다고 해서 크림이나 베이컨을 넣기도 하지만 그러면 우유만으로 익힌 순수한 맛이 사라진다. 눈을 가리고 먹고 싶은 접시 세팅을 몇 번 경험한 후, 차라리 채소를 깍둑썰지 말고 다져 넣고 그대로 익혀서 적당히 고기 위에 올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런다고 해서 접시가 아름다워지지는 않는다. 조금 깔끔해질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손님을 접대하는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버릴 뻔한 우유를 맛있는 저녁식사로 바꾸는 중이라고.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포크 인 밀크


닭고기 등을 조리할 때 우유에 담그곤 하니까 여기서도 우유 덕분에 돼지고기가 부드러워질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우유는 금방 줄어들어서 돼지고기 일부분이 항상 밖에 노출되므로 비교적 퍼석해진다. 하지만 기름기 많은 부위는 이 요리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더 부드럽고 촉촉한 고기를 원한다면 돼지고기 안심을 미리 염지해서 사용하자. 


재료(16cm 주물냄비 기준, 조리용 실 준비)

돼지고기(안심) 350g, 우유 600ml+, 타임 2줄기, 셜롯 1/2개, 마늘 3쪽, 생강 1톨(2cm), 버터 적당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드는 법

1 돼지고기 안심은 겉에 붙은 하얀 막 등을 제거하고 조리용 실로 서너 군데 단단하게 묶어 모양을 잡는다. 셜롯과 마늘, 생강은 손질해서 잘게 다진다.

2 주물냄비를 중간 불에 올리고 달궈서 버터를 넣고 녹인다. 고기에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한 다음 주물냄비에 넣고 돌려가면서 구워 고루 진하게 색을 낸다. 세워서 양 옆에도 색을 낸다. 필요하면 버터를 조금 더 넣는다. 고기를 꺼낸다.

3 냄비에 다진 마늘과 생강, 잎만 떼어낸 타임을 넣고 가볍게 볶는다. 고기를 다시 넣는다.

4 우유를 고기가 잠길 정도로 붓고(600ml 이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한소끔 끓으면 불을 약하게 낮춘다. 우유가 한 큰술 정도 남을 때까지 천천히 뭉근하게 약 40~50분간 익힌다. 금방 끓어서 넘쳐흐르므로 뚜껑은 반 정도 닫고 자주 확인한다. 윗면이 마르지 않도록 중간에 몇 번 고기를 뒤집어준다.

5 우유가 한 큰술 정도로 졸아들고 고기가 다 익으면 꺼내서 조리용 실을 잘라낸다. 쿠킹포일을 덮어서 10분간 휴지한 후 적당한 두께로 저민다. 냄비에 남은 졸아든 우유 소스를 데워서 고기 위에 뿌려 낸다. 필요하면 우유를 조금 부어서 소스 농도를 조절한다. 


Writing&Drawing 정연주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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