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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Apr 18. 2017

봄나물엔 크림, 냉이 감자 그라탕

크림에 익힌 감자에는 실패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얼마 전, 인터넷 장보기에서 여닫는 마개가 달린 1리터들이 수입 생크림을 발견했다. 드디어 꿈꿔왔던 언제나 크림이 샘솟는 냉장고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올레! 그동안은 멸균우유처럼 생긴 자그마한 휘핑크림이나 빨간 오백 미리 생크림을 열심히 사서 쟁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본격적으로 쓰기에 양이 부족하고, 오믈렛이나 수프 가니시에 한두 큰술 쓰고 싶어서 적당히 남겨두려 해도 제대로 봉하기 힘들어서 보존하기 마뜩잖다. 하지만 이제 우유병만큼 넉넉한 크기의 크림통이 있으니 마개만 열어서 콸콸 부어 쓸 수 있다. 꿈인가?


냉장고에 항상 크림을 마련해두고 싶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어린 시절 보던 외국 소설에는 크림 단지가 동그마니 놓인 부엌이 자주 등장했기에, 크림 한 통을 갖춰두면 왠지 으쓱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프랑스 요리가 주종목이라 간단한 크림수프나 파스타, 그라탕 등 크림을 듬뿍 넣은 요리를 자주 한다. 게다가 사실 급할 때 마늘에 버섯이나 시금치를 넣고 볶아서 졸이면 긴급 소스나 반찬으로 쓰기 아주 좋다. 치즈를 대충 갈아 넣고 간만 잘 맞추면 실패할 일이 없으니까. 의외로 어울리는 재료도 꽤 많다.


그래서 틈만 나면 냉장고를 열고 크림으로 요리할 핑계를 찾는다. 가을에는 땅콩호박으로 노란 크림 파스타를, 겨울에는 뱃속 따뜻하게 생강과 마늘을 잔뜩 넣은 크림소스를 뿌린 햄버그를, 그리고 봄이 오면 여지없이 봄나물로 크림 파스타며 그라탕을 만든다.


옛날에는 겨우내 쿰쿰한 묵은 나물을 무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으니 파릇파릇한 새순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하지만 떠난 입맛도 손잡아 끌어오는 봄나물은 사시사철 뭐든 구할 수 있는 요즘에도 반가운 얼굴이다. 향긋하고 알싸하니 새콤해도 매콤해도 맛있다. 정말 간단하게 봄나물을 요리하고 싶을 때는 유채순이나 원추리를 페페론치노와 함께 매콤하게 볶아서 봄나물 알리오 올리오를 만든다. 항상 만들던 양념장에 달래를 잔뜩 썰어 넣어도 괜히 봄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열에 강한 냉이로 꼭 한 번 크림소스를 만들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졸업 시험 메뉴를 개발하느라 냉이를 열심히 씻고 다듬었던 시절 이후에 생긴 집착이다.


봄나물 중에서도 손질하기 짜증스럽기로 냉이를 따라올 자는 몇 없다. 제멋대로 뭉친 냉이 더미를 씻고 무른 잎을 버리고 뿌리를 다듬노라면 한나절이 순식간에 지나고 허리가 끊어진다.  하지만 마늘이나 생강처럼 뿌리까지 송송 썰어 크림에 졸이면 느끼한 맛을 잡고 독특한 풍미를 낸단 말이다. 냉이 크림소스에 대한 집착만 버리면 굳이 이 고생을 사서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냐, 그래도 이름이 예쁘니까 매번 후회할 줄 알면서 사 올 것이다.



일단 참으면서 냉이를 다듬었다면 잎부터 뿌리까지 모조리 송송 잘게 썰자. 마늘도 잔뜩 꺼내서 굵게 다진다. 그러면 감자만 손질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이쯤에서 오븐을 200℃로 예열한다. 이번에 사용한 감자는 미국산 러셋 감자다. 말로만 듣던 러셋이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와 있길래 득달같이 주문했다. 수분이 적고 포슬포슬해 프렌치프라이 등에 적합한 감자다. 굽기 전부터 감동한 부분은 길쭉해서 껍질을 벗겨 썰기만 해도 베이킹 그릇에 예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자 세 개를 씻어서 껍질을 벗겨 0.5cm 두께로 썬 다음 베이킹용 그릇에 주르륵 모양내 담는다. 소금과 후춧가루를 충분히 뿌리고 다진 마늘과 냉이를 고루 얹는다. 크림을 찰랑찰랑하게 붓는다. 부족한 양은 우유로 채워도 괜찮다. 이제 오븐에 넣어서 크림이 졸아들고 감자가 익을 때까지 40~50분간 굽는다. 칼로 푹 찔러서 익었는지 확인해보자. 과연, 러셋 감자는 수미가 대부분인 우리나라 감자보다 덜 끈적거려 맛이 좋았다. 물론 구하기 쉬운 감자라면 뭘로 만들어도 상관없다. 크림에 익힌 감자에는 실패라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마늘을 잔뜩 넣었더니 완성될 즈음부터 집안에 달팽이 요리에서 나던 향기가 퍼졌다. 달팽이 버터에 마늘과 셜롯, 파슬리 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머지로는 냉이 버터를 만들어봐야겠는데 싶어서 남은 냉이는 손질해서 살짝 데쳐 얼려놓기로 했다. 마늘버터처럼 쓸 수 있는지 실험해봐야지. 어릴 적엔 더없이 한국적으로만 먹던 봄나물을 내 맘대로 요리하기. 괜히 제멋대로 사는 기분이라 신이 나고 입맛이 돈다. 



냉이 감자 그라탕


재료

냉이 2뿌리, 마늘 4쪽, 감자 3개, 크림 적당량,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드는 법

1 냉이는 깨끗하게 씻어서 잎과 뿌리를 손질해 잘게 다진다. 마늘은 잘게 다진다.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0.5cm 두께로 저민다.

2 베이킹 그릇에 감자를 예쁘게 깔고 다진 냉이와 마늘을 올린다. 감자가 자작하게 잠길 때까지 크림을 붓는다. 부족한 양은 우유로 보충해도 좋다.

3 200℃로 예열한 오븐에서 크림이 졸아들고 감자가 익을 때까지 40~50분간 굽는다. 칼로 찔러서 푹 들어가면 익은 것이다. 


Writing&Drawing 정연주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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