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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Apr 21. 2017

정말 팬 여섯 개가 필요할까, 뵈프 부르기뇽

뵈프 부르기뇽은 업사이클링 가정식이다

보통 평범한 가정에는 팬이 몇 개나 있을까? 혹여나 살다 보니 쌓인 팬이 십여 개씩 있다 하더라도 음식을 하면서 그걸 한 번에 다 꺼내서 쓰고 닦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미국에 프랑스 요리를 널리 알린 줄리아 차일드 레시피의 악명 높은 지점도 바로 여기다. 요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팬 대여섯 개를 지지고 볶고 오븐에 집어넣는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 집에 있는 <프랑스 요리 예술의 대가가 되는 법>을 꺼내 뵈프 부르기뇽 레시피를 읽으면서 필요한 팬 개수를 세어 봤다. 총 여섯 개가 쓰인다. 물론 나도 대여섯 개를 쓰는 방식으로 배웠다. 재미있달까 아이러니하달까 이렇게 만드는 뵈프 부르기뇽은 주로 프랑스 가정식이라고 불린다. 누가 평일 저녁에 식탁을 차리려고 팬을 여섯 개나 꺼내고 싶을까! 


뵈프 부르기뇽의 가정적인 면은 과연 무엇일까? 소고기와 와인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미 장바구니 총액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갈비찜은 한국의 가정식에 해당하는 음식인가? 명절 아닌 날에 갈비찜을 먹은 일은 그리 많지 않은데, 이게 갈비의 가격 때문인지 손이 많이 가서인지 모르겠다. 가정식의 본질은 저렴한 재료일 수도 있고, 간편한 조리법일 수도 있고, 남은 재료의 업사이클링일 수도 있다. 나는 뵈프 부르기뇽을 업사이클링에 분류한다. 집안의 유일한 술 애호가로서 손님이라도 오지 않으면 와인 한 병을 다 해치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렴한 와인이건 잘못 보관해서 맛이 살짝 간 와인이건 상관없이 남은 와인만 있으면 갈비보다 저렴한 부위의 소고기를 부드럽고 맛있게! 중요한 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아니, 근데 뵈프 부르기뇽이 가정식인 이유를 왜 대변하고 있는 거지. 뵈프 부르기뇽은 와인 덕분에 감칠맛이 터져 나오는 고깃국물과 부드러운 소고기만으로도 매력덩어리란 말이다. 갈비찜 국물에 밥 말아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버터 섞은 생파스타나 으깬 감자에 뵈프 부르기뇽 국물을 뿌려 먹고 싶을 것이다. 


다시 팬 얘기로 돌아가자. 뵈프 부르기뇽의 장점이 아무리 맛과 업사이클링이라 하더라도 일단 팬을 여섯 개나 꺼내야 한다면 간편이라는 면에서는 빵점이다. 문제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자꾸만 '이 정도는 해야 맛이 좋지' 하는 마음이 끼어든다는 것이다. 맛과 귀찮음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을 잡으려면 팬이 몇 개나 필요할까. 타협의 결과물인 마이 뵈프 부르기뇽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맛있는 뵈프 부르기뇽을 만드는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고기를 전날 미리 와인과 채소에 담가서 재워둘 것. 둘째,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을 것. 이것만 지키면 어떻게든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일단 고기는 먹기 좋게 손질해서 잘게 썬 당근, 양파, 셀러리 등과 함께 저장 용기에 넣고 와인을 잠기도록 콸콸 붓는다. 월계수 잎이나 타임, 파슬리 등의 허브가 있으면 같이 넣는다. 그리고 하룻밤을 재운다. 다음날 고기만 꺼내서 냄비에 버터와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조금씩 나눠서 넣고 겉만 지져서 고루 색을 낸다. 고기를 들어내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서 살짝 볶은 다음 고기, 재워놨던 와인과 채소, 물, 치킨 스톡 큐브를 넣고 뭉근하게 두어 시간 익힌다. 베이컨을 같이 볶아도 좋고 허브를 더 넣어도 좋다. 마음대로! 자유롭게! 


이제 고기가 쭉쭉 뜯어질 정도로 부드러워지면 기본은 완성이다. 간을 맞추고 새콤하면 설탕을 약간 넣자. 하지만 팬을 더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래도 부재료는 따로 익혀서 넣는 편이 모양도 깔끔하니까. 셜롯이랑 당근 글라세도 넣고 싶고, 양송이버섯도 넣어야겠고. 만약에 셜롯과 당근 글라세를 둘 다 만든다면 팬이 하나 더 늘어나겠지만 여기서는 당근만 넣었다. 당근 글라세에서 남은 국물은 달콤하니까 같이 넣어도 좋다. 당근 글라세 팬 추가. 


그리고 새 냄비에 버터와 베이컨에 양송이버섯을 가볍게 볶는다. 그리고 익은 고기과 국물을 당근 글라세와 함께 냄비에 넣고 섞는다. 이왕이면 고기만 골라서 넣고 국물은 걸러서 넣는 게 더 깔끔하게 완성되지만 귀찮으면 그냥 붓자. 이제 정말 완성이다. 고기를 익히는 것까지 미리 해두고 당근 글라세부터 먹기 직전에 해도 괜찮다. 

자, 지금까지 팬을 몇 개 썼지? 고기 익히는 냄비, 당근 글라세 냄비, 버섯 볶아서 고기 부은 냄비. 총 세 개다. 참고로 버터와 소고기의 기름기 때문에 세 개만으로도 설거지는 상당히 괴롭다. 당근 글라세와 버섯 따로 볶기를 포기하면 냄비 하나로도 완성할 수 있지만, 내가 타협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팬 세 개까지다. 뵈프 부르기뇽에 원래 들어가는 작은 양파 대용 셜롯도 뺐으니 당근은 반드시 넣어야 한다! 둘 중 하나는 꼭 넣자. 완성도가 달라진다.  



뵈프 부르기뇽 


재료(6인분)

소고기 갈빗살 또는 목심 1.5kg, 레드 와인 750ml, 양파∙당근 1/4개씩, 마늘 2쪽, 셀러리 1대, 밀가루∙토마토 페이스트 1작은술씩, 치킨스톡 1개, 버터∙올리브 오일 적당량, 소금∙후추 약간씩

부재료

당근 1개, 양송이 8개, 베이컨 2줄, 버터 적당량, 설탕∙소금∙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 소고기는 지방을 손질하고 적당한 크기로 썬다. 양파, 마늘, 당근은 잘게 썰고 마늘은 두드려서 으깬다. 저장용기 또는 튼튼한 지퍼백에 고기와 손질한 채소를 넣고 와인을 부어서 봉한다. 냉장고에 하룻밤 동안 재운다. 4~5일까지 재워둘 수 있다.

2 저장용기에서 고기만 꺼낸다. 바닥이 두터운 냄비에 버터와 올리브 오일을 달궈 고기를 조금씩 나눠서 넣고 돌려가면서 겉만 바싹 지진다. 고기를 들어내고 밀가루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살짝 볶은 다음 고기와 재워둔 와인∙채소를 넣는다. 고기가 푹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치킨스톡을 넣은 다음 뚜껑을 단단히 닫는다. 한소끔 끓으면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2시간 정도 익힌다. 고기가 무르게 익으면 소금, 후춧가루,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3 고기를 익히는 동안 당근 글라세를 만든다. 당근을 1.5cm 두께로 둥글게 썰어서 가장자리를 둥글게 다듬는다. 냄비에 넣고 버터 한 조각과 소금, 설탕, 후춧가루 약간씩을 뿌린 다음 물을 약간 붓는다. 종이 뚜껑을 만들어서 얹고 약한 불에 15분 정도 익힌다.

4 양송이버섯은 4 등분하고 베이컨은 잘게 썬다. 냄비 또는 웍을 달궈서 베이컨을 살짝 볶은 다음 양송이버섯을 넣는다. 익을 때까지 볶은 다음 ③의 냄비에서 고기를 건져 넣는다. 국물을 체에 걸러서 붓고 당근 글라세를 넣어 잘 섞는다.


Writing&Drawing 정연주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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