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만이 진정 유기견을 위한 일일까?
오늘 철환이와 배드민턴을 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강아지를 봤다. 2주전에 봤던 그 유기견이 분명했다. 시츄 종의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하얀색 강아지였는데,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2주전 보다 훨씬 마르고 지저분해졌다는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2주전 집 앞에서 처음 본 그 강아지는 나를 마주치고도 한 동안 피하지 않았다. 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웬 귀여운 강아지가 차 앞을 가로막고 서자 나로서도 어리둥절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작은 애완견이었다. 밖에 데리고 나왔으면 줄에 묶어서 산책을 시킬 것이지, 주인은 왜 길에 강아지를 그대로 풀어놓았나 싶었다. 강아지가 한 동안 나를 피하지 않기에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는데, 자세히 보니 눈에 난 털은 눈꼽 때문에 두껍게 뭉쳐있었고, 원래는 흰색이었을 털들은 때가 타 지저분했다. 입 주변의 털이 지저분하게 엉겨있는 것을 보아 최근까지 사료가 아닌, 길거리 음식을 먹고 다닌 것 같았다. 유기견이었다.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건지, 아니면 어쩌다 주인이 잃어버린 강아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슨 사연에선지 거리를 헤매게 된 게 분명했다. 덩치라도 컸다면 모를까, 누군가의 소중한 애완견이었을 게 분명한 작은 강아지의 처지가 너무나 불쌍했다. 강아지가 처음 나를 봤을 때 도망가지 않았으니, 일단 가까이라도 가볼까? 나는 먹을 거라도 나눠주자는 생각으로 가방을 열었다. 회사에서 아침에 먹으려던 빵이 그 안에 있었다. 빵을 꺼내 강아지에게 다가가는 순간, 녀석은 고개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버렸다.
그날 저녁, 잠을 자기 전까지 계속 그 강아지 생각이 났다. 강아지 주인은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강아지를 왜 들여놨단 말인가? 강아지를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라면, 강아지를 찾아달라고 집 근처에 호소문이라도 붙여놔야 할 터였다. 강아지가 도망가지 않고, 그냥 나한테 빵을 얻어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리면 광견병에 걸릴까 조심해야겠지만, 할 수 있다면 집으로 데려와 어떻게든 챙겨주고 싶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그 강아지는 겁이 많고 순한 게 분명했다.
그날 나를 향해 짖지도 않고 총총걸음으로 도망친 작은 강아지. 그 강아지를 다시 본 건 2주가 지난 오늘이었다. 강아지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일었지만,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겠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차라리 강아지가 안 보였으면 더 좋았을 거다. 강아지는 그때보다 훨씬 말라있었다. 안 그래도 겨울이라 날씨도 추웠울 텐데, 유기견이 잘 먹고 다닐 수는 없을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어제는 소나기가 내렸다. 저 강아지는 그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했을까. 더욱 안타까운 건 강아지가 나를 향해 걸어오다, 나를 보고는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버렸다는 거다. 상처 받은 기억 때문에 사람을 피하게 된 걸까?
나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는 철환이에게 물었다. 현재 축산계통의 연구원인데다 과거 축산직 공무원 생활도 했으니 무언가 강아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철환이는 해당기관에 유기견을 발견했다고 신고하면 처리는 되겠지만, 그게 썩 좋은 일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일단 구청이나 동사무소, 119 등에 신고를 하면, 유기견 보호센터 직원이나 군대체 복무 중인 수의사들이 신고 지역으로 출동을 한단다. 이때 유기견을 잡으면 데려와서 심장사상충 검사를 하는데, 여기에서 절반 이상의 유기견들이 바로 안락사를 당한단다. 유기견들은 심장사상충 감염률이 절반 이상으로 높은데, 심장사상충을 치료하려면 꾸준히 약을 먹여야 하고 치료비도 많이 들어 바로 안락사를 시키는 것 같았다.
예쁜 유기견일 경우 운 좋게 분양을 받으면 새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기견들은 30일 안에 안락사를 당한다고 했다. 철환이가 들려준 안락사 장면을 상상해보았는데, 안락사로 인한 죽음의 과정이 절대 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유기견을 분양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요약하자면 내가 저 강아지를 살리기 위해 신고를 하는 일이, 오히려 강아지를 죽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공교롭게도 오늘 읽은 ‘유엔미래보고서2040’라는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책에는 모든 동물의 몸에 의무적으로 칩을 넣는 까닭에 더 이상의 유기견은 없어질 거라 예측하는 구절이 있다. 그 시기가 2016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 영국은 2016년부터 애완동물이 새끼를 낳았을 때 칩을 넣거나 죽이는 것을 선택하도록 법제화했다. 물론, 유기동물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 때문에 법제화가 추진되었겠지만, 유기동물이 생기는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국민적 공감대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만 있어도, 더 이상 유기견이 생기진 않을 텐데….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유기견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유기견을 구조하기 전과, 구조하고 100일이 지난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기록한 어느 미국인의 블로그가 생각났다. 구조된 강아지는 렛미인 주인공 뺨칠 수준으로 탈바꿈을 한 뒤, 새 주인을 만나 사랑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다음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구청이나 119에 전화를 걸어 유기견이 있다고 신고를 해야할까?
2주 만에 다시 만난 강아지를 씻기고 잘 먹여서 길거리 생활을 하기 전으로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분명 30일 안으로 입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심장사상충에 걸렸다 판정이 되면 바로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꼭 유기견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기견의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거나, 유기견들의 위협 때문에 안전이 염려된다거나, 쓰레기통 주변을 어지럽히며 동네 미관을 해친다는 둥, 여러 가지 사유로 유기견을 신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처럼 유기견을 구하기 위해 동물보호센터에 연락을 하는 것이, 반대로 유기견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컬하다.
물론,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기견을 위한 일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들도 죽음을 예견하면 저항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강아지라고 다를까?
외할아버지가 집에 돈이 없다며 소를 팔려는데, 분위기를 알아챈 소가 눈물 흘리던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소의 큰 눈이 일순 불거지더니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려워 IMF(국제통화기금)에 돈을 빌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바로 그 때였다.
오늘 유기견이 죽기 직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어느 타이완 작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강아지들의 사진을 보니, 조금 전 거리에서 본 그 강아지가 다시금 떠오른다.
나는 집 근 처에서 강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강아지가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불편한 마음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끝.
"비극 예감한 듯... 안락사 전 촬영된 유기견들의 슬픈 모습(나유뉴스/1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