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by 이은수

“제 이름은 ‘은수’에요. ‘이은수’입니다. 수는 壽(목숨 수)에요.”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이름에 목숨 수를 사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보통 ‘빼어날 수’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내게 묻는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도 내 이름에서 가장자리에 배치되어 있는 ‘목숨 수’에 호기심이 들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오래오래 살겠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누군가는 죽을 위험을 겪는다는 건가 하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소리를,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도 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더 화가 났다. 내가 숨을 쉬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여덟 해가 흘러갔을 무렵, 나는 죽음에 삼켜질 뻔했다. 죽음은 내 목까지 차올랐고, 죽음의 울타리 안에는 나와 엄마가 함께 있었다. 사고였다. 사고는 엄마와 나를 죽음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와 있으면 어딜 가든 무섭지 않았는데, 어린 나도 그 울타리 안은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그때 의사는 우리 가족들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어머님은 안타깝지만 가망이 없습니다.”

“따님은 살 수 있을 확률 반, 그렇지 않을 확률 반입니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는 하시는 게.......”


나는 오십 대 오십으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었던 상황에 놓였다. 그렇게 나의 생사 여부조차도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엄마의 숨은 멎어 버렸다. 나는 중환자실에 있을 때 사흘간 꿈을 꾸었었다. 아마 사흘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하다. 모든 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내가 유일하게 기억나지 않는 꿈이 그때의 꿈이다. 사흘간 나는 꿈 안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가장 처음 보았던 것은 병원의 천장 타일이었다. 모두가 알고, 나는 몰랐다.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엄마의 장례식 속에서 가장 크게 울려 퍼졌던 울음소리는 할머니였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 있었다면 내 울음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눈물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슬펐을까.

나는 아홉 살이 될 무렵까지 엄마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몇 달간 병원 신세를 지며, 꾸준히 치료를 받았고 결국 살아남았다. 오십 대 오십의 비율 속에서 나는 결국 죽지 않았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말한다. 이름이 널 살린 거라고. 하지만 그 말이 달갑지 많은 않았다. 내 이름 속에, 내 삶 속에서 왜 그렇게 목숨이라는 단어가 복잡하고 위태로이. 하필이면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인지. 가끔은 내 이름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모두들 말한다. 너의 이름이 널 지켜주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내 이름은 나를 살렸다는데, 엄마는 죽었다. 내 이름은 엄마까지 살릴 힘은 없었던 것이었을까. 자책도 많이 했다. 엄마가 살 수 있었을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생각하며 내 유년기를 흘려보냈다. 그렇게 엄마에 대해서도 나를 살렸다는 나의 이름에 대해서도 잊어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이름이 예뻐요.”

처음 들어봤다. 이름이 예쁘다는 말을. 외자인 ‘수’라는 이름이 맑은 물을 연상시켜서 너무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기분이 좋았지만, 내 이름의 뜻은 맑지도 않았고, 물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제 이름의 뜻은 목숨 ‘수’에요.”

“목숨에 소중함을 깨달아가며 살라는 것인가요? 너무 멋져요.”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이름을 다르게 해석해 준 누군가가. 그리고 내 이름이 싫지 않았던 순간이. 비로소 이름의 한자가 제 뜻을 만난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이름이 처음으로 빛나 보였다. 그때 다시 궁금해졌다. 내 이름 가장자리에 놓인 목숨이.


“아빠 왜 내 이름에 가장자리는 壽(목숨 수)야?”

나는 약하게 태어나지도 않았다. 3.5KG의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고, 신생아일 적에는 너무 평화롭고 곤히 자서 모두들 돌아가면서 한 번씩 깨워봤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제일 평온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 물음에 아빠는 내 이름에 관련된 일화를 처음으로 말해주었다. 사실 엄마의 뱃속에 머물렀던 아이는 나와 언니뿐만이 아니라고. 엄마의 뱃속에는 두 명의 아기들이 바깥세상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되었다고. 그래서 다음에 태어날 아기는 꼭 살아주길 염원했다고 한다. 이 아기는 꼭 질기고 단단한 목숨 줄을 쥐고 태어나길.


"아가, 꼭 살아줘. 살아서 꼭 행복해줘."

그때 엄마의 기도 아래 내가 태어났던 것이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나에게 이름이 붙여졌다. 목숨이라는 뜻을 가진 '수'. 나는 죽을 번 한 아이가 아니라 살아야 할 아이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퍼즐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죽을 번했던 일들만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혀 있었다. 뒤집어보니 나는 살아남은 아이였고, 어렵게 살아남은 만큼 ‘잘’ 살아가야 할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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