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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May 10. 2020

<언니가 죽었다>

독립영화 리뷰

  언니는 왜 죽었을까?

   태어났을 때부터 우주(동생)와 우희(언니)는 항상 비교대상이었다. 동생 '우주'가 반 1등을 할 때, 언니 '우희'는 전교 1등을 했다. 우주는 뭐든 잘하는 언니를 미워했다.

  '뭐든 잘하는 언니가 미웠다. 언니가 하는 건 다 좋아 보였고, 언니가 하는 건 모두 따라 했다. 그런데 언니가 죽었다.'

  우주에게 언니란 존재는 선망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언니가 마시던 쓴 커피를 자신이 마시던 달콤한 오렌지 주스와 바꿀 정도로 우주의 눈에 언니가 하던 모든 것이 멋져 보였다. 그런데 언니가 죽었다. 그것도 자의로. 언니는 왜 죽었을까. 우주는 그 물음 하나로 언니가 살아온 길이자, 죽어 간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제 생각엔 우희 언니가 자살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언니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망설이고 있을 때, 누군가와 마지막 통화를 나누었다. 언니의 핸드폰 속 남겨진 통화기록을 따라, 우주가 처음 들렀던 곳은 편의점이었다. 우희는 종종 담배를 폈다고 한다. 동네 사람이라 안면이 있었지만, 친해지기 시작한 건 우희가 처음 담배를 사러 왔을 때부터였다고.  안경을 낀 더벅머리의 그가 말했다. 그날 이후 그는 우희와 종종 담배를 폈다고. 우희는 그에게 문자로 살기 싫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다고. 또 우희는 종종 편의점 음식을 다 털어가곤 했다고. 그리고 이내 소화제를 사러 왔다고.

  우주는 죽은  언니를 따라온 이 길에서, 언니를 따라 처음으로 담배를 폈다. 라이터를 서툴게 켜는 우주에게 우희는 담뱃불을 대신 켜준다. 그리고 서글픈 표정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우주의 시선이 언니를 향해 돌려졌을 때, 언니는 사라지고 없다.



  우주는 언니가 죽어가면서 살았던 그 집으로 들어갔다. 언니의 짐을 정리를 하기 위해, 그리고 언니를 정리하기 위해. 우주는 그곳에서의 언니를 상상했다. 언니는 다이어리 속에 버킷리스트를 목록화하고 있었다. 아니, 그곳에서 우주가 언니를 마주한 것이 상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언니를 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우주랑 엄마랑 같이 살기. 그러려면 돈 많이 벌기. 아나운서 돼서 엄마랑 우주랑 해외여행 가기. 돈 많이 벌고 여유 생기면 취미 생활 만들기. 잘하는 게 없다. 재밌어하는 건 있나? 돈 벌면 취미 생활 꼭! 별표 별표'

  언니가 바라던 것에는 온통 우주와 엄마가 있었다. 우주와 엄마가 없는 유일한 목록엔 언니의 취미 생활이 있었다. 언니에겐 취미가 없었다. 우주와 엄마는 가득 차 있는데, 언니가 하고 싶었던 것은 뒤로, 아주 뒤로 밀려나 있었다. 살아가야 해서, 자기는 죽어가는데. 그렇게 자기가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취미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우주가 언니의 집에서 본 거울 속엔 언니가 가득 차 있었는데, 거울밖엔 언니가 없다. 언니는 지금 이 방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다.



  우주는 언니가 등록했던 아나운서 학원에 들렀다. 행사기간이어서 일시불로 하면 천만 원이라고 한다. 언니는 그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우주는 그곳에서 청강을 하게 된다. 우주는 그곳에서 언니의 완벽한 스피치를 목격한다. 우주는 그런 멋있는 언니를 바라보며 웃음을 머금는다.  그곳에서 우주는 자신도 언니를 따라 스피치를 하게 된다.

  "예쁘게 생기셨는데, 화면에 되게 부하게 나오네? 여기, 되게 뚱뚱하게 나오거든요? 아나운서 하려면 기본적으로 여기가 좀 빠져야 돼서. 살부터 빼고 등록합시다. 다음다음."

  원장님이 말했다. 우주는 그 말을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언니는 이런 모진 말을 어떻게 견뎌왔을지, 언니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게워냈을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난무했겠지.

  "내가 돈 많은 아저씨 하나 소개해 줄까? 내 카드 값 해결해준 아저씨. 같이 밥만 먹으면 돼!"

  "싫어."

  "왜 한 번 해봐. 같이 밥만 먹으면 돈도 준다니까."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언니의 험담을 나누던 여자들이 그곳에 있었고, 그녀들이 나눈 대화이다. 우주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학원을 뛰쳐나온다. 우주의 세상이 산산조각 난 채 화면이 분할되어 보였다. 언니는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우주는 언니의 남자 친구를 찾아갔다. 그곳은 약국이었다. 부인과 사별한 약사가 있었다. 언니의 남자 친구였다. 그런데 언니는 약을 과다 복용하고 있었다. 약사인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도.

  "우리 언니 죽었어요."

  그 얘기를 들은 약사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오열한다.

  "힘들 때, 힘이 돼 준 친구였는데. 자주 우울해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약사면서 그런 약을 먹고 있는지는 몰랐네요."

  약사가 밖에서  말을 하고 있는데, 언니가 약국의 문을 열고 들어 간다. 언니는 그 안에서 약사와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언니가 그곳에서 나눈 웃음은 진심이었을까.



  우주는 언니의 집으로 돌아와 언니의 짐을 정리했다. 언니의 흔적은 조금씩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우주는 그곳에서 언니를 게워내며 침대에 파묻혀 울었다. 침대에서 고개를 반쯤 돌려보니 언니가 자고 있었다. 언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잠에 들어 있었다. 여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일까. 언니의 인생에서 언니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주는 '언니'가 아닌 '우희'라는 한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일생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우희를 이 생으로부터 완전히 작별시켜주었다.   


  우주는 한국여대 수시 면접에 합격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롤모델은 힐러리 클린턴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말을 번복했다.

  "사실...... 저의 진짜 롤모델은 언니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녀는 정의롭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녀는 그녀가 꼭 해야 하는 게 있을 때 집중력 있게 해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사람들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입니다. 저는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때때로 사람들에게 많이 무례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친절합니다. 그녀는 완벽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요! 따라서 저는 언니 같은 사람이 되길 간절히 원해요.

   그런데 언니가 죽었다."

  언니가 마시던 쓴 커피를 자신이 마시던 달콤한 오렌지 주스와 맞바꿀 정도로 언니의 모든 것을 따라 하려 했던 우주. 언니는 손에 쥐던 오렌지 주스를 가지고 우주에게 되돌아왔다.

  "넌 이게 맛있어?"

  "어."

  "난 맛없어. 너 이거 마셔. 대학 이따위 꺼 하나도 중요한 거 아냐. 너 하고 싶은 거 해."

  우희는 우희의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저 자신도 먹기 싫은 쓴 커피를, 우주에게 달콤한 주스를 마시게 하기 위해서 대신 마시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을 따라 하는 우주가 자신의 모든 길을 따라오지 않길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정의롭고, 집중력 있게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 그런데 그런 언니가 죽었다. 그런 우희가 죽었다. 우희는 우희의 인생 안에서 진심으로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모순적이게도 우주는 언니가 죽어 간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그곳에선 언니가 '우희'인 채 살아왔던 모습들이 보였다. 친동생인 우주조차 알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았다. 그리고 언니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장면 하나하나들이, 우주의 눈앞에 선명하게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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