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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May 16. 2020

지현이는 지현이다

thanks to 지현

   지현이는 흥이 많다.

 
   지현이와 있으면 절로 흥이 생기기에 술자리에 꼭 빠질 수 없는 친구이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 중 일정 주파수를 넘겼을 때, 돌고래의 초음파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지현이와 술을 마시면 돌고래가 뿜는 고음을 들을 수가 있다. 지현이의 얼굴에는 늘 장난기가 머금은 미소가 가득했고, 지현이가 하는 말은 우리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그게 어떤 부류의 이야기이든지.

  지현이는 노는 것도, 먹는 것도, 드라이브도, 산책도, 복싱도 좋아한다. 가끔은 좀 잡을 수 없이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튀어 다닌다. 탁구공 하나가 네트 밖으로 툭 떨어지면 보통 선수들이 다시 주워오곤 하는데, 지현이가 탁구공이라면 선수들이 주울 수 없도록 지그재그로 튀어 올랐을 것이다.

    


  지현이는 얼마 전 친구들과 글램핑을 갔다. 그때 지현이는 함께 간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졸라댔다.

  “아, 찍어 달라고!”

  친구들은 마지못해 지현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지현이가 함께 찍어달라고 요구했던 사진의 포즈는 미켈란 젤로의 ‘천지창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스티나 예배당의 중앙 천장화에서 네 번째 부분에 있는 ‘아담의 창조’이다. 하나님은 오른쪽 팔을 뻗어서 아담에게 생명의 불꽃을 전달하고 있으며, 아담은 왼쪽 팔을 뻗어 그 불꽃을 받아들이고 있는 삽화이다. 지현이는 하나님의 역할도 아담의 역할도 하지 않으려 했다. 하나님의 역할을 한 친구를 들어 올려 주는 엑스트라 1 정도의 역할이었다. 사진 속에는 지현이가 가장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담 역할을 한 친구 역시 방긋 웃고 있었고, 하나님의 역할을 한 친구는 엑스트라 1과 엑스트라 2에게 들려 힘겹게 공중에 떠 있었다. 사진 속에는 그 친구의 힘겨운 표정이 묻어 나왔다. 물론 지현이는 만족했다.     

  지현이의 SNS 계정은 지금으로부터 백 년이라는 시간은 건너뛰어야 볼 수 있는 듯한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다. 가끔은 지현이가 찍어 온 사진들을 이리저리 넘겨보다 한 시간이 흘러간 적도 있다. 손으로 터치하며 사진을 넘겨보다 가끔씩 깜짝 놀라게 된다. 내가 놀라는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지현이가 평범한 자세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거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경우. 그럴 때마다 나는 트럼프 카드 속에 화투 한 장이 섞인 기분이 들곤 했다.  

    


  “정말, 네가 주인공인 소설을 언젠간 써 보고 싶어.”

  내가 농담으로 던지듯이 말을 했다. 지현이는 특유의 밝은 목소리와 번쩍 뜬 눈, 입이 찢어질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로맨스로 해줄래?”

  “그건 아닌 것 같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현이에겐 장난 식으로 너랑 로맨스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속마음 역시 비슷했지만 달랐다. 지현이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았지만 나는 지현이를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로맨스 소설은 주로 주인공이 아프거나 행복해질 텐데. 나는 새드를 많이 쓰는 편이다. 지현이와 새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순 없지만 물에는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릴 순 있지 않나. 지현이에게 새드란. 한 방울 떨어뜨리려는 순간 스스로 새드라는 방울에 맞지 않으려고 전속력으로 뛰어다닐게 분명하다. 지현이에게 새드란 그 정도로 맞지 않는 장르이다.   


  오래간만에 열아홉의 시간들을 빼곡히 채워나갔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선 지현이가 있어도 지현이의 얘기가 반드시 등장하고 지현이가 없어도 지현이의 이야기가 반드시 등장한다. 있으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없어도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가끔씩 섬뜩하게.


  우리는 늘 열아홉 살 때 있었던 갖가지 사건들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먼저 이야기의 스타트를 끊는 역할은 A이다. A의 이야기로 서서히 닫혀 있던 열아홉의 서사들이 새어 나오고 있을 때쯤, 지현이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야, 그때 그거 기억나나? 지현이가 F한테 장난쳤다가......”

  열아홉 살의 지현이는 지금보다 더 개구 졌다. 쉬는 시간에 친구 F가 잠에 들어 있을 때 F에게 장난을 걸고 도망쳤다. 운동부였던 F는 매섭게 달려오기 시작했고 지현이는 온 힘을 다해 피해 다녔다. 몇 분의 추격은 얼마 가지 못하고. 이내 붙잡이게 되었다. 겁에 질린 지현이는 F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로 용서를 구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들은 낄낄대며 사진을 찍었다. 지현이는 그렇게 F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로 사진 속에 갇혀 버렸다. 술에 취한 지현이는 늘 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나눈다. 그건 술에 취하지 않은 지현이도 마찬가지이다.   


  하루는 그런 적이 있었다. 친구 G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지현이는 소주를 두 병 이상 마시고 취해버렸다. 지현이는 취할수록 더 놀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기에 어떻게든 해산을 막으려 했다. 그래서 G와의 술자리에서 G와 연결고리가 없는 친구 한 명을 호출했다. 그 친구는 지현이의 전화 한 통에 달려왔고 함께 술을 마셨다. 술자리에 합석하게 된 친구와 G는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다. 그럼에도 술의 뜨거운 기운은 어색함을 녹여냈고 그 자리는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1차의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지현이와 친구들은 2차로 옮길 궁리를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지현이는 짐을 싸고 있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바깥 벤치에서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저 혼자 한참을 배시시 웃더니, 당황스러운 한 마디를 날렸다.

  “얘들아, 나 집 간다!”  

  그렇게 지현이는 집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남겨진 건 G와 지현이의 전화 한 통에 달려온 친구뿐. 그 둘은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다.    


  가끔 나는 지현이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학문적인 이야기라던가. 나는 강의 시간에 배운 말을 지현이에게 하고 싶었고, 메신저를 보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지렁이의 어원은 ‘디룡이’였대. 땅에 사는 용. 그 뜻에서 디룡이라 이름이 붙여졌고 디가 구개음화되어서 지렁이가 된 거래. 나는 그렇게 아는 채를 조금 해보려 했다.

  “지현아 지렁이가 왜 이름이 지렁인 지 알아?

  “모르지 난, 지렁이 엄마가 그렇게 지어줘서.”

  역시나 우리는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나는 설명하지 않고 싶어졌다. 지현이에게 지렁이가 ‘디룡이’ 었다는 것을 말하기 귀찮아져서였을까.

  “지렁이는 자웅동체잖아. 엄마가 어떻게 있어.”

  지현이는 다시 정정해서 대답했다.

  “아, 그럼 지렁이 최초의 조상이 지어준 건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메신저를 닫았다.


  나는 지현이에게 다시 말했다.

  “어쩌면, 소설도 불가능할지도 몰라. 시트콤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가끔은 소설보다 시트콤을 찾을 때가 있다. 시트콤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웃겨준다. 화끈하게 웃고 싶을 때는 나조차도 시트콤을 찾게 된다. 지현이처럼 유쾌한.  인생조차도 가끔 시트콤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지현이와 함께 있으면 마치 시트콤 극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지현아, 그게 네 매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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