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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Apr 26. 2024

큰일 났다

내 브런치를 아빠가 읽고 있다!

얼마 전 60대인 아빠를 내 브런치로 어렵게 영입했다. 어플을 깔아주면서도 설마 읽을까 하고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아빠가 요즘 들어 내 브런치에 라이킷을 계속 누르는 것이다. 에이, 그냥 라이킷만 누르겠지.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심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런 말을 하셨다.


"브런치 몇 번씩 보긴 본다."

"......!"


요즘 브런치에 쓰라는 동화는 안 쓰고 별 얘길 다 쓰고 있다. 이 글도 아빠가 본다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나 이제 검열해서 올려야 하는 건가?


아빠는 어마무시한 방목형이었다. 내 친구들은 아빠들이 굉장히 엄격해서 무서워하곤 하는데 난 아니다. 아빠를 보면 가끔은 귀엽고 가끔은 짠하고 가끔은 웃기다.


아빠는 사과를 깎을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과는 기절을 시켜야 돼!"

그러면서 사과를 칼로 톡 한 번 가볍게 내리 친다. 왜 그러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 보면 사과도 살아 있는 걸까? 아빠 때문에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에피소드를 하나 더 얘기하자면 아빠가 웃통을 벗고 오부 바지만 입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언니와 나는 바늘로 옷을 꿰매다가 아빠의 등을 장난기가 서린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바늘로 아빠의 등을 살포시 눌러봤다. (정말, 간지러울 정도로만)

"무방비 상태잖아!"

그러자 갑자기 아빠가 소름이 돋았는지 상체를 비틀며 그라데이션 분노를 펼쳤다. 아빠에겐 이 것 말고도 에피소드가 참 많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면 아빠는 종종 말실수를 하곤 했는데, 이건 초등학교 때 내가 유일하게 다녔던 수학학원 선생님과의 상담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가정 형편이 썩 좋진 않은 터라 학원을 두 개 이상 다닐 수 없었기에 잘 배우고 있던 피아노를 체르니 30까지만 치고 그만두게 되었다.


"우리 은수가 옛날에는 예능(?) 쪽으로 나가려 했는데 이제는 수능(?) 쪽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예능도 어떻게 보면 의미가 맞긴 맞다. 수능도 결국 치게 되는 건 맞으니까 맞다. 그런데 그때의 어린 내가 엿듣기에도 어감이 좀 특이했다. 우리의 천사 같은 수학 선생님(언젠가 선생님에 대한 글이 나올 거예요.)도 속으로 아마 웃참을 하셨을 거다.


결론은 이럴 때마다 아빠가 좀 귀엽다. 귀여운 거에 빠지면 답도 없다는데 나는 항상 귀여운 거에 꽂힌다. 푸바오도, 마루는 강쥐(웹툰)도, 마이 스윗 피아노(산리오 친구들)도. 그리고 항상 누구와 만나든 그 사람의 귀여운 면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후, 그만 좀 귀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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