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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May 15. 2024

또, 사랑니

위쪽에 사랑니가 났다. 그것도 양쪽에. 매복으로.


오른쪽이 더 아픈 걸 보니 먼저 뽑아야 할 것 같다. 이번에 두 개 더 뽑게 되면 사랑니만 총 네 개를 뽑은 셈이다. 열여덟 살 여름 방학 때 아래쪽 사랑니 두 개를 격주로 하나씩 뽑았다. 하필이면 그때도 두 개 다 매복이어서 부분 절개를 하고 치아를 박살 낸 뒤 꺼내었다. 첫 번째는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뭐, 별거 아니네.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그런데 두 번째로 발치할 때는 9시간 동안 피가 멈추지 않아서 가족끼리 응급실을 가네 마네 열띤 토론을 했다. 다행히 상태가 양호해져서 다음 날 학교에 보충 수업을 하러 갔다. 내 짝꿍이 내 얼굴을 보더니 주섬주섬 폰을 꺼내어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벌에 쏘인 강아지

진짜 안타까운데 너무 웃기고 쟤도 아팠겠다 싶어서 볼을 부여잡고 웃었다. 웃을 때마다 찌릿찌릿해서 그날은 아무도 내게 걸지 않길 바랐는데 짝꿍이 평소보다 시끄러워서 더 괴로웠다.


사랑니는 그 존재에 비해 이름이 너무 아름답다. 첫사랑을 앓는 기분과 비슷하다 하여 사랑니가 되었으나, 나는 모르겠다. 첫사랑은 훗날 떠올릴 때 잘 가꿔진 정원에 나만 들어갈 수 없는 아련한 기분이 드는데, 사랑니를 떠올리면 치아 전체가 우르르 빠지는 괴로운 꿈을 꾼 듯 기분이 묘하다. 모든 치아가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날 것 같다.


결론은 사랑니를 뽑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격주로 뽑겠지. 이번에도 한 달 내도록 아플까? 미래에 고통을 얻게 됨을 알고 있지만 그 크기가 예측 불가능해서 더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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