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1분 소설

by 이은수

크리스마스이브까지 60일가량 남았다.

제법 선선해진 날씨 탓에 가벼운 외투 정도는 입어야 저녁의 온도를 버텨낼 수 있었다.


얼마 전 로맨스 드라마가 히트를 쳐서 한동안 로맨스바람이 불겠다 싶었다. 그러나 의외로 다음 히트작은 좀비물이었다.

좀비처럼 회사에서 일하다 진짜 좀비가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나와 인기를 얻고 있다. 주인공의 루틴은 '집-일-집'이었고 집에 와서도 다음날 회사에 가서 할 일을 미리 쳐내고 새벽 2시 즈음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좀비같이 일하는 게 루틴이 되어버려 진짜 좀비가 되어버린 남자.


"그럴 수 있겠다 싶네. 사람 사는 모습이 사람인지 좀비인지 헷갈릴 때가 많으니."

영후는 우리 집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건조한 어투로 얘기했다. 옆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에 종을 만지작 거리며.

나 역시 그 말에 공감이 갔으며, 마지막 회가 한참 남은 드라마에 대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꽤나 어지러워졌다.

좀비가 된 남자는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 어차피 다시 돌아가도 좀비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건 똑같을 텐데.

아니면 혹시 그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뒤로 조금은 다르게 살아본다든가.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질문은 그다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게 '좀비'는 매력적인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좋아한다. 내 생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이브 100일 전쯤부터 꼭 지키는 루틴이 있다.


출근송으로 <sia - snowman>을 반드시 듣는다. 눈사람이 녹지 않기 위해 북극으로 떠나는 모습이 나랑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눈사람이 북극에 가는 것만큼이나 가닿기 힘든 길목에 있다. 그럼에도 가야 하는 이유는 녹지 않기 위해서. 녹아내리는 건 눈사람뿐만이 아니기에.

그러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겨울 배경의 동화를 읽곤 한다. 대개 눈이 내리는 바깥 풍경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게 자연스러운 겨울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겨울의 따뜻함을 좋아해서 벽난로를 쬐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좋다. 추운 곳에서 따뜻해 본 기억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60일도 잔잔히 흘러갈 줄 알았다. 늘 그래왔으니 그래야만 하기도 하고.

영후를 배웅하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영후와 놀면 기운이 빨리 소진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십 분쯤 지났나, 눈이 반즘 감겨오더니 이내 잠들어버렸다.


눈을 떴는데 난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려 있었다. 내가 별이 된 건지, 눈사람 모양 장신구로 걸려 있는 건지 알아내려 몸을 흔든 그 순간 종소리가 울렸다.


크리스마스이브랑 가깝게 살아가면 크리스마스이브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두 달 남기고 트리에 걸린 종이 되어 버렸다. 돌아갈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큰일이다, 내 생일을 내가 아닌 체 맞이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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