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어.
묵직한 초침 소리가 빠르게 울려 퍼지며 방안을 가득 에워쌌다. 침대 위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L이 내 등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L의 시야에는 내 뒷모습이 가득 차 있었고, 내 시야에는 L이 차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누워 있지만 마주 볼 수 없었다. L의 눈동자 속에는 아마도 내가 하는 어떤 행위들의 뒷모습만 가득 차 있겠지. L을 마주 보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에게, L의 모양은 추상적인 형체로 굳어가고. 기록되어 있던 모습마저 왜곡되어 갔다.
나는 딱 한 번 뒤돌아서 그를 마주해 본 적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L을 보지 않으려, 최대한 그를 다르게 기억하려 노력했다. 희뿌연 형상으로. L은 뚜렷하게 드러나는 내 모습을 원했겠지. 어쩌면 내가 조금씩 그를 지워 가는 데에 명확한 이유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마주 본 그 순간에 L과 나 사이에는 현실이 놓여 있었다. 나를 앞만 보게 만든 것은 L과 나 사이에 놓인 그것이었다.
“너는 왜 나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니.”
L이 물어왔다. 내가 뒤돌아야만 L을 바라볼 수 있는데. 우리가 마주하기 위해서는 내가 뒤돌아야만 했고, 그대로 잠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L을 사랑한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그의 모습은 외면해버렸고, 마주하며 머무른 채로만 있을 수가 없었다. L을 떠올릴 때 늘 행복했던 기억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을 뺄셈 하고, 빼고, 또 빼 나갔다. 그렇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L에 대한 기억들을 빼 왔다. 그새 L은 앙상해져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뒤돌아보면 남은 건 현실밖에 없을 거라고.
“L, 어쩌면 내가 뺀 너의 기억 속에 행복도 존재했을까.”
내가 L을 지워감과 동시에 그는 앙상해졌다. 어쩌면 지금쯤 소멸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해야, 그 기억 속에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막한 냄새가 풍겨왔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느껴지는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내 등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없었던 것과 남지 않은 것은 달랐다. L을 남기지 않은 것은 나였다.
L, 내 등 뒤에는 여전히 네가 있고, 너는 여전히 나를 마주하며 잠들어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어. 여전히. 하지만 문득 네가 영원한 잠을 자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내 세계에서 문득, 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