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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Nov 07. 2020

그런 공간

1분 소설

  시화는 주름이 진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원피스는 새하얀 파동을 일으키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게 내가 처음 마주한 시화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나는 병원 밖에서 창백한 낯빛으로 시화를 바라보았고 시화는 병원 일층 매점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 누구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시 보게 될 확률이 희박한 어느 누군가와 오 초간 시선을 나누는 것. 지나쳐 온 시간과 공간이 뒤엉켜 생긴 작은 틈새 정도에 박히게 될 기억일 뿐이다.

  나는 그녀를 그 정도로만 생각하려 했다.          

  


  “오늘도 갑자기 숨이 턱 막혔어?”

  시화가 내게 물었다.

  “응. 그냥 누워서 아빠 사진을 보다가 심장이 턱 막혀왔어.”

  병원 안에서 바라보는 창문 밖 풍경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모습이 갇혀 있었다. 시화는 나보다 먼저 상실을 겪었고, 상실이라는 단어의 깊이 속에 먼저 마음을 적셨다. 시화는 내게 젖은 부분을 감추고, 젖지 않은 부분만을 드러냈다. 그래서 시화는 늘 단단해 보였다. 그래서 였을지 모른다. 내가 시화에게 깊은 고민을 나누게 된 것이.

  “그때 내가 친구들하고 울면서 술 마실 때 아빠는 죽어가고 있었어. 아무도 우리 아빠가 죽는 순간에 옆에 있어 주지 못했어. 내가 그때 아빠의 곁에서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시화는 울먹이며 얘기하는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그녀는 그 순간 나의 슬픔 속에 함께 떠내려가지 않을 정도로만 내가 되었고, 나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로만 내게 발을 담갔다. 함께 위태롭지 않아서 좋았다. 시화만은 나와 다르게 단단해 보여서 안길 수 있었다. 나는 오직 시화에게만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에 눈앞에 가장 소중하게 여긴 사람들이 없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가 보일 때 아빠는 얼마나 슬펐을까, 시화야.”

  “아버지, 많이 아프셨다고 했잖아. 많은 것을 견뎌오셨을 거야. 마지막에 널 보지 못해서 슬프셨을지도 몰라. 하지만 죽음 이후에 세상은 그 누구도 모르잖아. 아픔과 슬픔을 망각할 수 있는 어딘가로 가셨을 거야. 가장 외롭고 아팠을지 모를 마지막 순간을 꼭 잊으셨길 바라자. 네가 볼 수 없는 세상은 네가 바라는 대로 믿길 바래.”

  “사람은 죽어가며 사는 걸까, 살다 보니 그 끝이 죽음인 걸까.”

  “그 무엇도 아니라 생각해. 죽음은 죽음대로 온전하고, 삶은 삶대로 온전하게 분리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산 사람은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죽은 사람은 이생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거라고. 나는 내 동생이 내 곁을 떠난 날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적 없거든. 나는 남겼지만, 내 동생은 잊었으면 해.”


  시화가 이어서 내게 물어 왔다.

  “혹시,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나게 된 날 기억해? 그때 너 아이 같았는데.”

  


  병원 일층 로비에서 노란 파스텔톤의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가 두 번째로 만난 날, 나와 그녀는 우리가 초면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오 초간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날 유난히 볕은 쨍하게 퍼져왔고, 그녀의 눈동자는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을 뿜어내는 옅은 갈색 구슬 같았다. 갈색 구슬 같은 눈을 가진 그녀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열은 없고, 식은땀은 나네. 우리 할아버지 주치의한테로 가볼래? 여긴 네가 올 병원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그곳은 요양병원이었다. 시화는 입원한 할아버지에게 매주 한 번씩 병문안을 왔고, 나는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그곳으로 갔다. 병원 안에 만날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내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

  “아니 괜찮아. 곧 나을 거야. 그냥… 나는 병원을 좋아해. 그래서 이 근처에 오면 안정감을 느껴.”

  “으응? 너 엄청 이상하다. 병원이 왜 좋은 거야?”

  시화는 양 눈썹 다른 높이로 찌푸리며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죽음이 무서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악몽을 꾸거나, 아플 때! 이곳 문 앞에만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시화는 흥분해서 쏟아부은 내 말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 미안해. 처음 듣는 말이라. 나는 그냥 이 병원에 들어오지도 않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는 바깥에만 서 있는 네가 궁금했어.”

  “제일 가까운 병원이 여기야.”

               


  “여전히 기억하지. 내가 조금 뜬금없이 흥분했잖아.”

  “그때 엄청 놀랐다? 가까운 병원이 이곳이라고 말했을 때도, 집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뛰쳐나왔을 네 모습을 생각해 보니까 엄청 기특하더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줘서 고마워.”

  “아, 그 말은 기억 안 해도 돼… 지금은 이곳에 오지 않아도 치유가 돼. 근데도 오고 싶어.”

  "혹시 나 보려고?"

  나는 표정에 내 감정이 모두 드러나는 편이었다. 붉게 차오르는 피부색이 대신 답변이라도 해주듯이.

  “시화야 그때 내가 너한테는 병원이 어떤 공간인지 물었을 때, 뭐라 말했는지 기억나?”

  “아니… 그건 기억이 안 나. 왜 내가 했던 말인데 기억이 안 나지?”

  “너는 그때 그렇게 말했어. 너한테 병원은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는 공간이라고.”


  시화는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도 자신이 별생각 없이 꺼냈던 것이지 않을까 하는 말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여백의 공간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나는 시화의 말이 여백 속 남은 공간을 채워낼 수 없는, 맞지 않는 퍼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녀에게 이 말은 중요히 여겨지지 않더라도, 그때는 나름의 의미를 가진 채 입 밖으로 뱉어낸 말이었을 것이다. 시화에게는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몇몇에 순간이 존재했을 것이다. 동생의 오랜 투병 생활이 끝이 나며, 병원을 떠나게 된 시화는 흐르는 시간에 납득을 해야 했고, 처해진 상황과 타협을 해야만 했다. 그렇구나. 그럴 수밖에 없구나. 시화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제는 동생을 가슴에 담은 채로,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야만 하는 공간.

                    


  일주일 전부터 시화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로비에도, 매점에도, 바깥 벤치에도. 시화는 없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처음으로 병동으로 올라가 보았다. 시화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는 이곳을 같이 올라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화가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들었던 할아버지의 이름을 간호사실에서 물어보았다.

  “안성식 할아버지 혹시 몇 호에 계시나요?”

  “아… 혹시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할아버님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는데. 가족분들이 장례도 다 치루 셨어요…”

  시화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시화는 사라졌다. 그녀는 더 이상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 아마도.

     

  1998년. 나는 시화가 어디 사는지도, 시화의 집 전화번호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그녀의 이름과 그녀가 가진 죽음에 대한 사유뿐이었다. 시화는 떠났다. 시화가 없는 병원 로비는 환자들이 가득 차 있어도 비워 보였고,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히 움직여도 한산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한 번쯤 이곳에 와볼 거란 기대조차도 할 수 없었다.

      

  이곳은 시화에게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는 공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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