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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Mar 24. 2021

무지

에세이

  지난겨울부터, 산책을 하며 나에 대해 알아가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나를 몰랐다. 나는 나에게 있어서 한없이 무지했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길을 걷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때때로 얕고 가벼운 생각들이 점차 무거워지며 감정의 깊은 골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무엇을 제일 좋아할까.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나는 누구일까.


  첫 질문부터 꿰지 못하니 뒤따라 오는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모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다.
  나는 나와 시간을 가져야 했다. 관계에도 때로는 시간이 필요하듯, 나 역시 나를 조금 더 믿고 기다려 주기를 원하는 듯했다.

  매일 방안에는 머리가 멍하고 잠은 오지 않는 그런 나의 밤들로 가득 찼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정작 봄이 오니 나는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다음 봄을 기다리게 되었다. 무언가 조금은 따스해지고, 조금은 녹고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누구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그것들에 해답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걸어보았다. 우리 동네에는 작은 하천이 있다. 물이 흐르는 소리를 따라 걷고 있으면 개구리가 보이고, 청둥오리가 보였다. 운동을 하는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 그리고 학생들도 몇몇 보였다. 나처럼 혼자 거니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신기했다. 이곳은 시간이 조금 느슨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우리 동네는 작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작은 곳에 있으면 내가 덜 작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오히려 커 보일 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작고 소박한 공간을 좋아했다. 어릴 적 작은 방 안에서 더 작은 나만의 공간을 이불과 의자로 만든 뒤, 그 안에서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가장 싫어하는 것.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한 번에 많은 곳을 이동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해서 20분만 더 걸어오면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만큼 싫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곳은 한 방향으로 걸어서 10분만 오면 됐고,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래 머무르기에도 좋았다. 앉아서 헤엄쳐가는 청둥오리들을 보며 쟤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먹이를 먹기 위해 살아갈까, 번식하기 위해 살아갈까, 그것도 아니면 살기 위해 살아갈까. 알 수는 없다. 적어도 지금의 나보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겠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예전에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조금 가볍고 볼품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깊고 무거워져야 했으며, 남들에게 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답변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했다.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닌데, 주위 환경이 나에게 그런 나약한  마음을 가져선 안된다고 속삭여 왔고, 조금 더 배우게 되니 그 배움이 아깝지 않냐는 속삭임이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까. 정확히 말하자면 알 수 없다. 그래서 속삭임들에 휩쓸려가지 않고 그저 '나'라는 본질을 기억하며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내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왔는지 조금은 알게 되지 않을까.


  나는 누구일까. 지금의 나와 내 글이 보잘것없다고 움츠려 들어 있는 나. 내가 먼저 나를 발견해주어야 한다고 목표 없이 희뿌옇게 안개가 서린 목표를 찾아 길을 떠나고 있는 나. 오르골 소리를 들으며 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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