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소설
영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본인과 똑 닮은 것들이 방 안에 넷이나 더 있어서.
"우리 언제 나가?"
두 번째 영서가 허공에 초점을 둔 채로 말했다.
"나는 여기도 좋아. 우리 신경 쓰지 마, 영서야."
세 번째 영서가 바닥에 드러누워 말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영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영서와 두 번째 영서의 첫 만남은 일주일 전이었다. 영서는 강변을 산책하다 우연히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플리마켓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액세서리, 옷, 향수, 과자, 여러 가지 제품들이 다양하게 놓여 있었는데, 그중 가장 시선이 머물렀 곳은 포춘쿠키 앞이었다. 기존의 포춘쿠키보다 크기가 커서인지 영서는 쿠키 앞에 주먹을 가까이 대보며 크기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한 개씩 팔아요!"
셀러가 덤덤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왜요?"
"쿠키가 크잖아요."
집으로 돌아온 영서는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눕기만 하면 구르는 습관이 있는데 싱글베드라 한 번 구르니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벽을 마주하고 있는 영서의 모습은 꼭 벌 받는 사람 같았다.
벽에 머리를 붙이고 십 분쯤 누워 있더니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으로 향했다. 가방 안에서 쿠키를 집어 들었다. 영서는 포장지를 뜯어 과자를 꺼냈고 반으로 쪼개었다. 종이를 꺼내어 읽자마자 반으로 쪼개어진 쿠키를 먹기 시작했다.
- 스스로를 가엾게 보지 말 것. 자꾸만 가여운 당신이 생겨날 것.
영서는 종이를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셀러가 말했듯 쿠키가 제법 커서 오래도록 씹어야 했다. 그때 문자 알림음이 울렸고 보험료가 빠져나갔다. 보험료가 빠져나가니 영서의 잔액은 급격히 줄었다. 영서는 스마트폰을 탁상 위에 얹어 놓고 다시 침대로 갔다. 다시 벌 받는 자세로 누워 벽을 바라봤다. 삼십 분쯤 지나고 영서는 얕은 잠에 빠졌다. 그러다 바스락 소리에 눈을 떴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는데 자신과 똑 닮은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서는 소스라치게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탁자 위에 스마트폰과 베개를 자신과 똑닭은 사람에게 집어던졌고 이어서 문을 열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원룸밖으로 나온 후에야 긴장이 풀렸는지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잠깐만!"
방 안에 두고 왔던 그가 다시 영서 앞에 나타나 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너, 뭐야. 귀신이야?"
"아니야, 나 귀신 아니야. 나는 가여운 너야."
*
하루가 지나자 세 번째 영서가, 사흘이 지나자 네 번째 영서가 생겨났다. 일주일 즘이 지난 지금, 영서들은 대책을 논의했다.
"어떻게 하면 다섯 번째가 안 생기지?"
"그건 모르지."
네 번째 영서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네가 너를 가엾게 보지 않으면?"
다섯 번째 영서가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너네가 나니까 알잖아. 내 삶이 어떻게 가엾지 않을 수가 있어?"
네 명의 영서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내 방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내가 가엾기를."
그렇게 말하고 영서는 부엌에 가서 냉동고에 얼려둔 얼음물을 꺼내어 벌컥 들이켰다.
후에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보니 다섯 번째 영서가 생겼다. 영서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이마를 힘껏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