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기록하고 잊어버리기

by 이은수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다. 결혼하는 지인이 많아졌다. 종종 청모를 하면 그 사람이 이 사람과 결혼을 마음먹게 된 이유에 대해 듣게 되는데 개개인마다 다 다른 포인트에서 결심이 서곤 한다는 게 신기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대개 사랑하니까 결혼한다. 사랑이 후숙 되면 안정이 되고 안정되는 순간 이 사람 앞에서는 내가 되어도 되겠다고 판단하게 된다.

곧 저들의 사랑도 무르익을 것이다. 그때의 모양이 몹시 궁금한 걸 보면 나는 지금 그들이 부러운가 보다.

청모를 가졌던 지인이 말했다. 미래의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의 특징, 즉 이상형을 글로 써보라고. 본인이 아주 오래전 적었던 글이 현실이 되어서 너무 신기했다고. 들어보니 정말 용했다. 그래서 오늘 나도 집에 가면 써봐야지 결심했다.


할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했고, 주사가 있으셨다. 집에서 내가 제일 어리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편이어어서 맨날 나한테 오셔가지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래서 스트레스받을 때가 많았다. 어른이 돼서 되도록이면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마시더라도 절제할 줄 알거나 술에 취한 자신의 몸을 충분히 가눌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가족 중 흡연자가 없어서 담배도 안 폈으면 좋겠다. 외적인 이상형은 아예 없다. 그냥 내가 오랫동안 먹어온 약이 있는데 그걸 이해해 줄 수 있고, 글 쓰는 내 모습을 멋있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같이 읽고 써주는 사람이면 더 좋을 것 같다.


쓰고 나니까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혼자 지내는 삶도 좋다. 이렇게 써놓았으니 이제 잊어버리고 살면 된다. 혹시 모른다. 이렇게 이상형을 쓰고 잊어버리면 먼 훗날에 이 글을 다시 찾을 날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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