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수 Mar 10. 2022

애도 (哀悼)

에세이

 방안이 텅 비워졌다.     


 할머니는 고모가 사는 집으로 갔다가 그곳 인근 요양원으로 입소했다. 나와 한 공간에서 숨결을 뿜어내던 할머니는, 이제 이곳에 없다. 가끔 투명한 연기 속에 할머니와의 일들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연기치 고는 너무 투명해서 방문을 열 때마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내 눈에 비춰 들었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종을 치는 여인이었다. 각자의 방이 있었던 우리였기에 잠이 들 시간에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잠들었다. 잠이 묻은 할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가끔은 귓가에 스며들지 않는 순간이 많았다. 할머니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방편을 생각해보던 중 종이 떠올랐다. 가볍게 흔들기만 해도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종. 그래서 우리는 종을 샀다.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오면 우리는 달려가야 했다. 잠결이든 화장실에 있든 밥을 먹고 있든. 할머니는 주로 밤에 종을 자주 울리는 편이었다. 그때마다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 간이변기에 앉혀 드렸다. 가끔은 종소리가 미워지기도 하고, 무섭게도 들렸다. 때로는 종이 울리지 않을 때에도 종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급한 종소리에도 잠에 젖어들어 그 소리를 못 들은 채 한 적도 있었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두유를 자주 마시는 편이었다. 과자를 먹다가도 효자손으로 두유 박스를 톡톡하고 가리켰다.

 - 할머니 두유 줄까?

 - 그래.

 가끔 밤에 종이 울려 달려 가보면,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신호가 아닐 때도 있었다. 효자손으로 두유 박스를 가리켰다. 두유가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 할머니 밤에는 소화 안 될 텐데 물 마셔요.

 할머니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효자손으로 계속 두유 박스를 가리키며 바닥을 두들겼다. 두유를 마시게 하는 것 이외에는 할머니를 다시 꿈의 나라로 가게 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두유가 다 떨어지고 또 두유를 주문했다. 두유가 도착하는 날이면 나는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 할머니, 선물 왔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거!

  

 이곳에선 할머니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물건들이 있었다. 그것은 초록 빗과 효자손과 리모컨과 종이 었다. 초록 빗은 요양보호사님이 오기 전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기 위해 곁에 있었고, 효자손은 멀리 있는 물건을 끌어오기 위함이었고, 리모컨은 사용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언제나 곁에 두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듯 보였다. 그리고 종은 앞에서 말했듯이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거나, 두유가 먹고 싶거나, 그냥 우리 얼굴이 보고 싶거나. 할머니가 열심히 색칠 공부를 할 때는 그 물건들이 책상 위에 있었고, 잠에 빠져 있을 때는 배게 옆에 나란히 눕혀져 있었다. 어쩌면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이 할머니만의 보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몸은 점점 악화되었고,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할머니의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음에도 나의 일상은 흐르고 있었다. 산책도 할 겸 빵을 사러 가던 나는 주머니 속에서 울려 퍼지는 전화벨을 듣고, 핸드폰을 꺼내어 쥔다. 아빠였다. 제발 아빠의 입에서 ‘할머니’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설령 할머니의 일이더라도 병원에 기저귀 값을 입금해주어야 한다는 그런 일상적인 일들이길 바랐다. 벨소리는 길게 이어졌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무거운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할머니 마지막으로 보러 가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이제는 내가 존재하고 있는 시간 속에 할머니의 숨결은 더 이상 새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흩어지고 흩어지다 이내 소멸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당장 택시를 불러 언니와 병원으로 향했다. 손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내 손이 내 것 같지 않았다. 손가락을 펼쳤다 쥐었다를 수십 번 반복한 끝에 그것이 내 것임을 자각했다. 급하게 택시에서 내리고 할머니가 있는 병동으로 들어갔다.

 희뿌연 머리칼과 창백해진 낯빛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의 초점은 허공과 허공 그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손을 꽉 쥐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들을 평소에 써 놓을 걸 그랬다. 해야 할 말이 참 많았는데.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입 밖으로 반복해서 새어 나왔다.

 - 할머니 내가 미안해. 미안해.

 계속해서 낮아져 가는 맥박과 산소포화도 수치가 보였다.

 - 할머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응? 사랑해요.

 할머니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마음과 목소리가 병든 몸에 갇혀 그 어떤 말도 쏟아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두 개의 단어만 교차로 내뱉다가 끝이 났다. 할머니에게 꼭 묻고 싶었던, 대답을 듣지 않으면 가슴 안에 품은 돌이 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 할머니, 할머니의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 있었지?

 뱉지도 삼키지도 못한 물음은 마음속에 퇴적되어 단단하게 남겨졌다.      




 할머니의 생 안에서,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이 반드시 존재했길. 다음 생은 할머니를 위해 반드시 존재했으면 좋겠다. 허리를 수그리게 하는 세상 속에서 허리를 펴고 살아가느라 고생했어요. 이제 병든 몸에서 빠져나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벅찬 행복을 안고 날아가요. 그 행복이 멈추지 않고 끝없이 샘솟기를 기도할게요.     

작가의 이전글 시작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