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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ul 01. 2021

시작에 관하여

에세이

  '사귀자'라는 말을 뱉음과 동시에 시작되었던 20대 초의 연애. 지금은 그 한마디 없이도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신 물음은 있었다. 우리의 감정에 관해 확신을 얻기 위해.

  "우리 뭐야?"

  정말 궁금해서 남긴 한 문장이었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순간에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뱉고 싶었으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과 답답함이 뒤엉켜 단어 선정에 오류를 주었다. 우리가 가진 감정은 한참 전에 공유되었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연애 철학은 친구의 연애상담을 들어주는 날이면 시도 때도 없이 입 속에서 새어 나왔다.


  "영화도 보고, 데려다주고, 내 연락에 1분 만에 답장해줘. 근데 한 달 동안 고백은 없어."

  "진짜 사랑한다면 고백을 하지 않을까?"

  '진짜 사랑한다면 고백을 하지 않을까' '않을까' '않을까' '' '까' '까'라고. 친구의 귓가에 시계 초침처럼 반복되며 울려 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내 대답은 어리석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사랑의 서사를 내 이성이 개입하여 판단하는 것은 친구에게도, 친구가 사랑하는 그에게도, 심각한 오류를 빚어낼 수 있다. 그리고 훗날 그 철학이 나에게 비수로 돌아와 꽂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연애의 모양은 어떻게 바뀔지 그 누구도 모르기에.

  

  그때는 그랬다.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고백'을 하겠지. 시작에는 '고백'이 필요해. 고백으로 시작되지 않는 연애를 보며, 불완전한 연애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야 생각한다. 어떻게 사랑의 감정을 고백으로 다 담아내겠는가. 그 충만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여 속으로 끙끙 앓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나는 연인 관계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랑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감정을 통제해 왔다. 그가 먼저 선명하게 드러내기 전까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수동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된 연애관이란 없다. 그 당시에는 같은 자리에 지긋이 서 있던 내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으며.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나는 이제 한 발자국씩 다가갈 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연애관은 끊임없이 흘러 움직인다. 그렇기에 무엇이 맞다. 틀리다.라고 정의할 수 없다. 나를 사랑한다면 '고백'이 따르겠지.라고 말하며 기다리기만 하던 나는 어느샌가 변해있었다.    


  "우리 뭐야?"

  고백 없이 진행되고 있는 연애에 먼저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내 모습을 찾게 되었다.

  "사랑하는 거야."

  쭈뼛쭈뼛하며 그가 대답했다. 그렇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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