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수 Jun 02. 2020

시금치 무침, 김밥 그리고 할머니

thanks to 할머니

  “왜 또 시금치무침이 들어가 있는데.”     


  할머니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휘어 있고, 볕에 타서 까무잡잡하다. 굽은 허리만큼이나 굽은 손가락으로 할머니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소풍을 가는 초등학생 손녀를 위해 시금치무침까지 만들었다. 그 시금치 무침을 넣어 김밥을 여러 줄 싸기 시작했다. 김 한 장에 밥을 가득 펼쳐 발랐고, 그 위에 단무지와 햄, 계란 지단, 맛살, 그리고 시금치 무침. 시금치 무침을 넣었다. 할머니는 손녀가 여덟 살에 입학할 무렵부터, 졸업할 때까지 소풍 가는 날엔 항상 시금치 김밥을 싸 주었다. 하지만 늘 도시락은 가득 채워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는 늘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니 배 안 고프드나? 한 개도 안 뭈네.”


  손녀는 할머니에게 ‘그냥.’이라고 무성의하게 답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손녀가 남겨 온 시금치 김밥은 그날에 할머니의 밥상이 되곤 했다. 비워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는 항상 손녀의 도시락 속을 빈틈없이 가득 채워 가방 속에 넣어 주었다. 할머니는 다시 돌아오는 도시락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곤 했다. 손녀도 알고 있었다. 할머니도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손녀는 할머니를 외면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팽겨 쳐버리고 누웠다. 할머니는 마디마디가 휘어 버린 손으로 시금치 김밥을 집어서 입 안에 집어넣었다. 손녀가 주방으로 갈 즈음 도시락은 이미 비워져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손녀를 위해 싸 주었던 시금치 김밥은 모두 할머니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어린 손녀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손녀가 5학년에 올라갈 때까지 이러한 일들은 반복되었다.  


  하지만 5학년 이후 한 사건을 계기로부터 손녀의 도시락이 비워져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도 예쁘게 싸 달라고! 왜 김밥만 꽉 차 있는데. 또 시금치 김밥이 가. 반찬으로 용가리도 먹고 싶은데.”

  오 학년의 소풍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손녀는 여전히 할머니와 시금치 김밥에게 화를 냈다. 그렇게 손녀는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녀가 할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손녀는 원래부터 시금치 무침을 싫어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늘 상 도시락 속 시금치 김밥으로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었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시금치 무침을 자주 해주곤 했다. 손녀는 집에서 반찬으로 주는 시금치 무침은 잘만 먹다가도, 김밥 속에 들어 있는 시금치무침은 보자마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손녀가 시금치 김밥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친구들의 도시락과 비교할 때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그렇게 어리고 어린 이유 하나로 시금치 김밥을 부끄러워했다. 엄마들이 직접 싸 주었던 친구들의 도시락 안에는 장아찌가 들어있는 주먹밥도, 고소한 주먹밥 튀김도, 고기가 잔뜩 들어 있는 김치볶음밥도, 속이 가득 차 있는 유부초밥도. 전부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심지어 캐릭터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손녀는 도시락을 친구들 옆에서 선뜻 열지 못했다.

  “니, 와 안 먹는데?”

  한 친구가 손녀에게 물어왔다.

  “그냥, 배 안고프다.”

  친구들은 도시락을 돗자리에 펼치고 나눠 먹었다. 손녀는 도시락을 펼치지 않은 채 돗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한 친구가 손녀에게 말했다.

  “내 거 묵자. 주먹밥 튀김인데, 우리 엄마가 해줬다.”

  손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도시락을 훑고 다시 주먹밥 튀김을 바라보았다. 주먹밥 튀김을 한입 먹는 순간, 자신은 배고픈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인지해 버린 것 인지. 손녀는 먹음직스러운 주먹밥 튀김을 먹지 않고 거부했다.


  소풍이 모두 끝나고 차에 올라탔다. 손녀의 짝꿍은 도시락을 싹싹 비우고도 배고파했다. 관광버스 안에서 손녀의 짝꿍은 물었다.

  “야, 니 김밥 남갔제?

  “어. 근데 와?”

  그 순간 짝꿍은 손녀의 김밥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손녀는 계속해서 안 된다고 거절했고, 짝꿍은 친구끼리 나눠먹자며 호시탐탐 도시락을 빼앗을 궁리만 했다. 그렇게 도시락을 가지고 짝꿍과 실랑이를 하게 되었고, 짝꿍이 힘으로 도시락을 열어버렸다.


  그 순간, 관광버스 전체에 고소한 냄새가 퍼졌고, 손녀의 시금치 김밥이 많은 이들에게 공개되었다. 손녀는 중간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앞자리에 앉은 선생님도 뒤를 돌아보았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 몇몇 아이들도 손녀의 자리로 급하게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손녀의 예상과 다르게 시금치 김밥에 엄청 난 호기심을 보였다.

  “야, 이 뭐꼬. 김밥에 시금치가?”

  “오, 고소한 냄새 난다야.”

  “한 개만 먹어도 되나?”

  그렇게 많은 아이들에 손이 거쳐 갔고, 손녀의 시금치 김밥은 두 개가 남게 되었다. 손녀는 남은 김밥 두 개를 집어 먹었다. 남은 김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먹지 않고 꽁꽁 숨겨두었을까. 왜 할머니를 서운하게 했을까.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이 아니어서? 도시락이 예쁘지 않아서? 손녀는 바보 같던 자신의 나날들을 흐뭇하게 웃으며 반성했다. 그때 짝꿍이 손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니는 부럽다. 우리 아빠는 간단한 주먹밥만 싸주는데, 할머니가 김밥에 시금치도 넣어 주시고.”

  짝꿍은 말할 수 있었다. 엄마가 싸 주는 도시락이 아니라는 것을. 손녀는 엄마가 없다는 것과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이 아니라는 사실을 몹시 부끄러워했는데. 모두들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이라고 말할 때, 그렇게 말할 수 없어서 입을 열지 못했는데. 손녀의 짝꿍은 당당하게 말했다.


  “근데 사실 네 것도 맛있는데 우리 아빠가 싸 주신 주먹밥이 최고다. 요리를 꼭 엄마가 해야 할 필요 있나? 난 엄마 본 적도 없고, 모든 일은 다 아빠가 하는 건  줄 알았다.”

  짝꿍이 이어서 말했다.

  “근데 보니까 그런 거는 역할이 따로 없는 것 같드라. 보니까 내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더라고.”

  함께 어렸던 짝꿍에게선 손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손녀도 말문을 열었다.

  “나도 이거 우리 할머니가 싸 줬다. 새벽 다섯 시에 일나서.”

  “우와, 그럼 너네 할머니가 너를 제일 사랑하는갑네.”


  그날 손녀는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워서 왔다. 그리고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비워진 도시락을 열어 보였다. 할머니는 행복한 표정으로 손녀를 바라보았다. 손녀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시간 즘이었다. 손녀는 냉장고를 열어 할머니가 만든 시금치 무침을 꺼냈다. 그리고 밥과 고추장, 계란 프라이, 참기름. 마지막으로 꺼내 놓은 시금치무침을 섞어서 비볐다. 손녀의 첫 요리였다. 할머니는 늘 시금치 김밥을 손녀에게 싸 주었고, 손녀는 시금치 비빔밥을 할머니에게 선사했다. 할머니는 시금치 비빔밥을 한 숟갈 뜰 때마다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그날 손녀가 처음 했던 시금치 비빔밥은 맛있었을까. 그 사실은 할머니만이 알고 있다.  

    

  “할머니, 내 제일 사랑해줘서 고맙다.”

  “뭐라 카노.”

작가의 이전글 <벌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