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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Dec 24. 2023

테두리

에세이

 막았더니 내가 새어 나온다.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너는 연해져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너는 다시 선명해지고 있다. 두려웠다.

너의 키를 어림잡아 테두리를 그려냈고 그 안에 너를 숨기려 했다. 하지만 너는 모두 담기지 않았다. 여전히 여덟에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던 너. 너의 키는 한 뼘이나 더 자라 있었다. 나는 너를 예측하지 못했지만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열다섯이 된 나를 좇아와 같이 열다섯이 되었고, 스물이 된 나를 좇아와 같이 스물이 되어 있었다고.



테두리를 지우고 다시 그린다. 더 작게 만들었다. 너를 선명하게 스케치하고 싶은 마음과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테두리 바깥으로 살짝 빗겨 나간 너를 보며 안도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사라지지도 선명해지지도 말아 달라고. 테두리 안에 숨겨진 너도, 테두리 바깥에 드러난 너도, 가끔 너를 잊어버리는 나도. 모두 괜찮아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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