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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Dec 10. 2023

작은 원룸

1분 소설

가끔 난 L의 사랑을 시험해보곤 했다.


심하게 싸운 날이면 항상 그랬다.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이 말한 뒤 어딘가 숨어서 날 찾는지 확인해 보기. 그럴 때마다 L은 언제 어디서든, 어디로든 달려왔다. 땀에 젖은 머리,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은 눈물. 그것으로 증명됐다. 너는 날 사랑하는구나. 너는 화조차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우리가 함께 살던 집으로 향했다.  


한 집에서 살림을 차린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볼꼴 못볼꼴을 다 보았으며 내게서 L에 대한 설렘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너는 한결같이 말해주었다. 사랑해. 어제 잘 때 너무 귀엽더라. 사랑을 증명받기 위해 했던 나의 행동들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L은 이미 사랑이란 단어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이었고, 사랑이란 단어가 아니더라도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너랑 함께한다면 이 작은 원룸에 평생 살아도 행복할 거야. 오히려 가깝게 느껴질 거야. 그렇게 속으로 수도 없이 너와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균열을 낸 것은 사람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고 미래였다. 마음속으로는 작은 원룸에서 너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냈지만,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은 아주 독하고 날카로워서 그 그림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급기야 해선 안 되는 말들도 내뱉었다.

- 넌 도대체 뭐가 되고 싶어?

- 내 꿈은 너랑 영영 사랑하는 거야.

- 너랑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

아차 싶었다. 문득 내 바닥은 어디까지일까 생각이 들었다. L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욕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네가 조금은 덜 불쌍해 보이니까. 하지만 역시 너는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이해한다고 했다.

- 네가 모질게 말할 때 속상해. 그때 분명 너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 거거든.

L이 내게 속상한 이유 속에도 L 자신은 없었다. 마치 L은 내가 만든 작은 원룸 속에 갇혀 있는 듯했다.


하지만 L은 언젠가 내가 만든 작은 원룸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렇게 나는 홀로 남겨졌다. 한순간도 둘이 아닌 이곳을 떠올려 본 적이 없어서 가슴이 시큰했다.


L과의 다음 장면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를 만났고 그에게서도 L을 찾았다. 하지만 L이 아닌 그는 결코 L이 될 수 없었다. L이 무언가를 해내면 기뻐서 울었고, 그가 아프면 속상해서 펑펑 울곤 했다. 그러나 L이 아닌 다른 이에게 선 다른 눈물이 흘렀다. L에게서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처를 그에게 받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가 무언가를 잘 해낼 때마다 초조했고 그가 아파도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L을 위해 만들었던 작은 원룸을 불태워버렸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재가되어도 남겨진 것은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이제 작은 원룸 따윈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누구도 가두지 않고 싶으니까. 그리고 더는 누군가의 집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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