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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an 21. 2024

스물

에세이

“우와아! 안녕하세요! 여기 맞아요~”


단대 앞에서 이리로 오라고 펄쩍 뛰며 손짓하는 h를 보았다. 활짝 웃어도 사라지지 않는 큰 눈과 새하얗고 맑은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긴 생머리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 나는 그때부터 꼭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h와 있으면 늘 든든했다. 나를 놀리는 친구에게 하이킥을 날리기도 했으며, 마치 조개 물어다 주는 해달처럼, h는 나에게 친구를 물어다 줬다. h 덕분에 어느새 주위에 친구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h가 물어다 주는 조개 속에는 b도 있었다, b는 키가 크고 말랐다. 어느 날 h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은수, 저 b 친구 옆에 가서 서 보면 재밌겠다.”


나는 키가 평균 이하였고, b는 평균 이상이었다. 과장 좀 하자면 b를 반절 접어놓으면 내가 나온달까. 여하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친구들이 술자리의 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었다. h는 청순한 얼굴과 가녀린 손으로 쏘맥을 힘차게 말았다. 그리고 b는 잔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소기처럼 들이켰다. 나도 자연스레 반 병이 한 병이 되었고, 한 병이 한 병 반이 되었다.(물론 지금은 약 복용 중으로 먹을 수 없다만.)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그해 축제 때 소주 몇십 병을 비워 탑을 쌓았다. 기분이 좋았다. 술에 취해 교내에 심겨 있는 튤립도 보러 갔고 우리끼리 몰래 염통 꼬치를 구워 먹기도 했다.


그해를 냄새로 표현하자면 흙이었다. 뭐가 많이 섞여 있지만 언제 맡아도 싫지 않은 냄새.


*


우리는 한 번씩 그때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삼킨다. 대신 그때가 좋았지. 돌아가고 싶다. 등등의 말을 내뱉으며.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고 앞으로 물리적인 거리는 더 멀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확신한다.


우리는 그때도 여전히 딱 이만큼 잘 지낼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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