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ge M Jun 25. 2020

인터뷰 - ‘글로벌 프렌즈’ 농구단 소장 천수길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원문보기

바이라인 김혜민



▲글로벌 프렌즈 팀원들 <사진=김혜민 기자>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꾸준한 운동은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번에 기만난 사람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구성된 농구팀 ‘글로벌 프렌즈’의 천수길 소장이다. 


천 소장은 농구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한국농구발전연구소를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동료들이 농구로 이름을 꽤 알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이 명성으로 좋은 일 한번 해 보자’고 설득했어요. 시작은 발달 장애 아동, 고아원 아이들로 구성된 농구팀이었습니다. 그러다 동료들이 다른 자리를 찾아 가고, 강남구청이 팀 하나를 전담하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로 농구팀을 꾸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로벌 프렌즈가 출범한 건 해외 여성 결혼 이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2008년이다. 천 소장은 다문화 가정에서 재능있는 아이를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당시엔 다문화 가정은 '농촌 총각이 매매혼으로 이룬 가정'이라는 인식이 많아 서울 근처에서 아이들이 몰려있는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천 소장은 용인·구로·금천·영등포 등 다양한 지역을 찾았으나 팀을 만들기도 전에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됐다. 어떡할까 고민하던 천 소장에게 지인이 이태원에 한번 가 보라고 했다.

”전 그때만 해도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다문화 가정이 아니라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결혼 이주민만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산다고 여겼죠. 이태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제 편견도 같이 깨진 거예요. 하교 시간이 좀 지나고 초등학교에 갔더니 애들 두어 명이 쪼그려 앉아 흙장난을 하고 있더라고요. 뭐하냐고 물었더니 지금 집에 가봤자 사람도, 할 일도 없다고 하길래 제가 '같이 농구 할래?' 했죠.“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같이 놀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뻐했다. 천 소장은 바로 교장실에 찾아갔다. 교장은 교감 선생님을 소개해 줬고 교감은 “마침 학교가 끝나고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다”며 천 소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처음엔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다. 황토로 된 운동장에는 골대조차 없었다. 그래도 거기서 몇 달을 뛰어다니니 학교 측에서 강당을 빌려줬다. 유명한 농구 선수들이 찾아왔고 또 그렇게 몇 년을 활동하자 하나투어가 지원에 나섰다.


천 소장은 ”어떤 일이든 혼자 진행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습니다“라며 웃었다.

12년 동안 주욱 한 팀을 이끌어 왔지만 회비를 받지 않는 만큼 경제적인 이익은 거의 없다. 천 소장에게 팀을 계속 이끄는 이유를 물었다.

”보람차요. 제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 고맙다는 표현을 정말 잘합니다. 조금만 칭찬해줘도 무척 기뻐하고요. 고등학교에 간 아이들에게 입학선물 같은 걸 주고 싶어 물어보니 ‘그동안 해주신 게 얼마나 많은데 오히려 제가 해드려야죠’ 하더라고요.”

나는 아이들이 피부색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아왔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큰 기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유난히 외국인을 배척하는 한국 정서상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긍정적인 마음을 표현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 아닐까?


천 소장은 "그럴 기회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게 맞다"며 말을 이었다. “농구는 아이들을 모이게 하는 매개체예요. 처음 농구단에 들어오면 다 비슷한 말을 합니다. 여태 혼자였는데 여기 오니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고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고 유대감을 느낄 일도 없죠. 하지만 농구는 팀 스포츠잖아요. 자연스레 동료애가 생깁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돕고 칭찬하고 같이 뛰는 경험을 하면서 소속감을 느낍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겐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천 소장은 이런 경험을 많은 아이들이 느끼길 바랐고 다양한 다문화 스포츠팀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쉽게도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그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정말 잘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여러 스포츠팀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다문화 농구팀을 만들려는 후배들의 앞길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글로벌 프렌즈를 이끈다면 더 잘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결론이 났냐고 묻자 천 소장은 “내가 더 열심히 해야죠. 그것밖에 답이 없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다.

천 소장은 글로벌 프렌즈의 아이들을 보면 ‘미운 오리 새끼’가 떠오른다고 했다. “미운 오리 새끼는 결국 백조잖아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생김새는 달라도 정말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영민한 아이들도 많고 다방면으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어요. 전 아이들이 편견에 기죽지 않고 그 능력을 마음껏 펼쳤으면 합니다”라고 말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기자님은 버킷리스트가 있어요?” 생각지 못한 질문에 당황하자 천 소장은 “전 나이 육십에 생겼어요. 우리 애들이 오바마를 만나는 거요. 버락 오바마도 다문화 가정 출신이고 어린 시절 방황을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농구를 하면서 새로운 사람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오바마가 처음 농구공을 잡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글로벌 프렌즈의 팀원들에게 말해주면 그것만큼 힘이 되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라며 웃었다.

진심이냐고 묻자 천 소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꼭 이룰 거예요. 글로벌 프렌즈의 팀원 중에서도 그만큼 훌륭한 인재가 나올 수 있다고 믿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겁니다. 사실 지난 방한 때 제가 오바마에게 편지를 썼어요. 단 1분이라도 좋으니 우리 아이들을 만나 농구 이야기를 해 달라고요. 보안상 문제로 불발됐지만 어려운 일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 소장의 말에선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는 외국인이고 미국을 성장시킨 게 이주민들이었듯 앞으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우리나라에 크게 기여할 거예요.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백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단순히 외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와 온정을 나누는 것보다 외로움을 먼저 배우는 아이들이 없기를 꿈꾼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 - '꼬모나미' 발달장애인의 그림을 작품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