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4

보고 싶은 사이


"자기는 늘 나를 보고 싶어 하잖아?"


"맞아. 계속 보고 싶어."


사랑한다는 말 보다 보고 싶다는 말이 더 진짜 같다고 하는 대사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온다. 그리고 뭐더라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나는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라는 대사도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온다. 이 영화는 애인과 처음으로 집에서 같이 본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혼자 봤을 때보다 더 의미가 깊어졌다. 봐도 봐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 같다. 그만큼 질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야 작작 해. 원래 허니문은 6개월까지야. 6개월 이후부터가 진짜라고."


친구들 단톡방 중에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제목으로 된 톡방이 있다. 이 톡방에 함께 하는 친구들은 나까지 3명인데 나를 제외하고는 둘 다 장기연애 중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들에게 장난으로 "남편분은 게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래. 나도 게이. 애인도 게이. 친구들도 게이. 우리는 게이들이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어야 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는 실재하는 존재들이다.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돌연변이도 아니고 세상을 망치게 하는 악당들도 아니다. 사실 이런 것들을 나열하는 것도 지겹다.


왜 우리만 그래야 하지? 왜 우리만 설득시켜야 할까?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라고 평범하다고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죽기 전에는 가능할까? 차별금지법 하나 없는 나라에서? 동성끼리는 결혼조차 못하는 나라에서? 가능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애인이 보고 싶다. 서로를 껴안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고 싶다. 애인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생각들이다.

지난겨울 우리 위기의 주부들은 탄핵 집회에 자주 나갔다. 내가 바라는 것들이 한 번에 전부 이뤄지지 않더라도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었다.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민주주의는 성소수자를 지켜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었다. 뭐 거창할 것도 없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우리를 광장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대놓고 성소수자에 대한 글을 쓸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지난겨울에 마주한 계엄이라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었다.


"아니 지금 이게 말이 되냐고?"


말이 안 되는 현실에서 말이 안 되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 게이인 나는 40대이다. 내가 나를 게이라고 인지하고 살아온 지도 내 인생의 절반보다 더 길다.

나는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소녀시대 20주년 콘서트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요즘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많지만 어쨌거나 스엠의 가수들과 음악들을 좋아하는 핑크블러드이다. 지금은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 앞으로도 소녀시대를 나도 오랫동안 외치고 있다. 집회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면 마음이 어쩐지 몽글몽글 해지기도 한다.

소녀시대의 멤버 중에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과 마주할 때면 어쩐지 내가 응원하던 마음에 답장을 받은 것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왜 이렇게 소녀시대 이야기를 많이 하냐면 8월 1일은 멤버 티파니의 생일이고 8월 5일은 소녀시대의 데뷔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라고?) 나의 20대와 30대와 40대에 모두 소녀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있어주는 존재. 많은 시절을 함께하는 존재. 그것만으로 나에게 소녀시대는 의미가 크다.


지금의 나는 애인이 소녀시대처럼 내 삶에 계속 계속 있어주면 좋겠다. 계속 계속 계절의 변화를 함께하고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괴로움을 같이 살아내면 좋겠다. 예전 노래 중에 이가희의 오빠는 황보래용이라는 노래가 있다. 세상을 왕따 시켜주세요 라는 내용의 가사가 있는데 그 노래 가사처럼 세상을 왕따 시킬 수는 없고 그냥 세상에 스며든 채로 무난하게 살고 싶다. 세상이 나를 왕따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기의 주부가 되고 싶은 우리가 계속 우리였으면 좋겠다. 보고 싶어도 보고 싶은 나의 연인이 나를 계속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에 계속 집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