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헤어져도 계속 형이랑 알고 지내고 싶어"
얼마 전에 애인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헤어짐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싫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필요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그건 언제일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될까? 궁금해질 때도 있다. 이제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벌써부터 헤어짐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만남이 이 관계가 이 시간들이 서로에게 소중하기 때문임을 반증하는 것 같다.
"나는 헤어짐을 전제로 말 안 했으면 좋겠어."
이전에 나는 연애가 끝나면 상대방과 함께한 시간들이 생각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 함께 찍은 사진부터 함께 보고 구매했던 물건들이나 선물 받았던 것들을 전부 내 삶에서 삭제시켰다. 아주 철절하게 지워버렸다. 나는 이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애를 쉬지 않고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연애의 경험도 이별의 경험도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쩌면 헤어지게 된다면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잃고 싶지 않다. 계속 내 삶에 두고 싶다. 지금의 이 시간들과 기억들을 모두 가지고 살고 싶다.
"우리가 이성애자로 만났으면 결혼했을까?"
"맞지! 우린 바로 결혼했지."
이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 더욱더 헤어짐을 전제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 그게 속상하기도 하고 때때로 서럽다. 어떤 때는 억울하다. 괴롭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고립감을 느낀다. 답답해진다. 사라지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그럼에도 지키고 싶다. 놓지 않고 싶다. 꼭 잡고 싶다. 이 몽글몽글한 마음을 만들게 하는 당신을. 안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꿈꾸고 싶다. 바라고 싶다.
희망하고 싶다. 우리가 계속 계속 만나는 날들을. 시간들을. 수많은 다음들을. 다음의 계절들을. 봄이 오면 벚꽃을 구경하러 가고 여름이 오면 피서를 같이 가고 가을에는 갈대축제를 겨울에는 방에 앉아 귤을 까먹는 일들을 함께하는 것을 상상한다. 수많은 다음들이 우리에게 허락되기를 빈다. 그다음들이 너무나 간절하다. 이런 마음들이 욕심이라면 욕심내고 싶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라면 바라고 싶다. 이뤄질 리 없다고 해도 이뤄지게 하고 싶다.
어쩌면 헤어지게 된다면을 생각하면
돌아오는 마음은 늘 같다.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