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
살아오면서 성인 남성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성소수자를 미지의 존재로 비극적인 존재로 사회가 대상화했을지언정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이성 관계와는 다르게 동성 관계는 어떻게 관계 맺음 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심 무의식적으로 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불행한 연애를 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었다. 대부분의 지난 연애에서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이 관계가 지속될까 불안해하고 관계 안에서 안정을 전혀 찾지 못하다 결국은 상대방의 입에서 이별하자는 이야기가 뱉어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일들이 너무나 당연했었다.
어떤 연애는 잠수 이별로 어떤 연애는 카톡 이별로 또 가장 최근의 이별은 하루를 같이 보내고 함께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이뤄졌다. 연애를 하면 할수록 어쩐지 나는 행복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많은 노력을 들이더라도 힘들고 많은 연애를 해도 힘들었다. 어떤 기대들은 나를 보란 듯이 배신했고 어떤 미래들도 가차 없이 나를 떠나갔다. 그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 그 하나가 너무나 큰 것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왜 나에게 이럴까? 사회적으로는 혐오 세력이 매일매일 차별과 혐오 선동을 통해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개인적인 연애는 날이 갈수록 빠르게 끝나버리고 별 기대를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크게 애쓰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했다. 물론 그것이 참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 바람인 것도 매우 잘 알았지만 그럼에도 늘 사랑을 희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시작된 연애는 그런 희망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는 그게 뭐 어떠냐고 이야기해주는 사람. 오랜 나의 정신 건강 의학과 진료에 대해 괜찮다고 해주는 우리가 함께할 때만큼은 우울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 집회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그 주제와는 별개로 내가 얼마나 귀엽게 보였는지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
어제는 애인이 내가 출근한 사이에 우리 집에 와서 집 청소를 하고 저녁을 준비해 놓고 편지를 남기고 갔고 저녁에는 내가 당근을 하러 외출한 사이에 집에 와 냉장고를 채워 놓고 저녁을 함께 먹고 갔다. 이제 연애를 한지 딱 1개월이 지났다. 이 사람을 너무 믿게 되고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 왜 그런 생각을 하냐는 의문보다는 해도 된다고 실컷 하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
어쩐지 나도 행복해도 될 것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남의 것은 맞으나 좀처럼 내 것은 아닐 것 같던 행복과 함께 하고 있다. 세상에 왜 내 사람은 없는지 원망스럽던 그 시절들과 화해하고 있다. 나조차 나를 홀로 남겨두던 그 시간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시절. 이래도 괜찮다. 이래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