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애
얼마 전부터 새로운 연애를 한다. 연애를 하게 된 그는 내게 예측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냥 처음엔 관계를 접고 싶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었다는 것이 더 적합하겠다. 누군가와의 연애로 이별하는 것도 지겹고 상처받는 것도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와 다시 연애를 한다. 거의 내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이 자기를 마음 껏 좋아해도 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 연애를 하면서 성소수자인 나의 사회적 처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내가 애인을 어떻게 만났는지 어느 부분에서 관계적 어려움을 느끼는지 다 설명하는 게 새삼 귀찮아진다. 밤산책 중에 손 한번 잡는 것도 세상 고민되어지는 이 사회적 처지를 가볍게 이야기할 재간이 없다. 그 바쁜 와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그럼에도 겉으로 티내지 않는 법에 도가 텄음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 삶을 은폐하는 것이 공개하는 것보다 내게 유익하다는 믿음은 나를 감추는 것이 생존 수단 중 하나인 것으로 만들었다. 나같은 오픈리 게이도 클로짓과 연애를 하면 상대의 존재를 감추는 것이 연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되는 사회적 현실. 이런 현실이 때로 누군가를 죽어버리고 싶게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이 보편적 감각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궁금하지도 않다.
애인과 나는 도보로 20분 거리에 산다. 보통은 우리 집에서 만나 저녁을 먹거나 OTT에서 영화를 본다. 이번 주에는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다가 연기가 너무 오글거린다는 애인의 평가에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았다. 아무튼 뭐 내용은 결이 비슷하니까 영화에 나오는 데이트 폭력남을 보여 애인이 엄청나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어쩐지 마음이 놓인달까? 김고은의 연기가 좋다며 연기 잘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애인은 나를 만나기 전에는 남자와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내가 그의 인생에서 연애를 하는 첫 동성 연인이다. 주변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는 나중에는 애인이 결국에는 여자랑 결혼하는 것 아니냐며 비아냥 거렸다. (디지기 싫으면 입 좀 닫으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머리에 힘주고 참았다.) 애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런 이야기에 상처 받지 말라고 했다. 상처라기 보단 그냥 상대방을 조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애인은 혹시라도 자기 때문에 내가 상처 받을까봐 나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엄청 하고서 나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고민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가 갑자기 여자가 좋아졌다고 한다거나 나중에라도 기혼 게이가 된다고한들 상관없이 그냥 지금이 좋다. 둘이서 만나는 동안 서로가 계속 웃느라 바쁜 관계는 귀하다고 생각한다. 애인을 보고 있으면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상대를 위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뭔가 변화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나는 연애라는 관계의 기본 자세라고 생각하는데 애인은 그 자세도 귀하지만 우선은 있는 그대로 상대를 마주하고 하고 싶은 표현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안하고 걱정이 되더라도 자기에게는 다해도 된다고 말하는 애인을 보면서 마음에 여러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연애를 하면 내 애인을 자랑하고 싶고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인데 그런 마음이 참아질 만큼 나는 애인이 좋다. 애인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으면 어쩐지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이거면 되었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는 불확실해 보일 수 있는 관계일지라도 괜찮다. 이미 나는 성소수자이고 거기서부터 이 나라에서 나는 별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