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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몰랐던 것들

돌봄은 감정이 아니라 환경에서 시작된다

by 공감수집가

엄마를 우리 집 근처로 모시기로 했다.

자주 찾아뵐 수 있고, 무슨 일이 생겨도 금세 달려갈 수 있으니까.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사 첫날, 엄마가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서 계셨다.

출입 카드를 들고 문을 열지 못하셨다.

푸시 앤 풀 도어록이 낯설었던 것이다.

‘세상 편한 문’이 엄마에게는 ‘세상 어려운 문’이 되어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에게 새집은 도전이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으로 들어오는 일,

그건 건강한 사람에게도 쉽지 않다.

공동 현관, 전등 스위치, 다용도실 문, 리모컨 버튼까지

내겐 한눈에 익숙한 생활의 풍경들이 엄마에게는 매일 새로운 퍼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엄마의 새 집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으로.

월패드 하나, 전등 스위치 하나, 리모컨 버튼 하나.

내게는 익숙한 일상이 엄마에게는 어떻게 낯설어질 수 있는지를 처음 봤다.


다음 날부터 하나씩 바꿔나갔다.

출입카드 대신 작은 키를 폰에 연결하고,

현관문에 자석 메모판을 붙여 두었다. 외출 전 체크리스트도 함께 적었다.

리모컨 버튼에 스티커를 붙여 "전원", "채널", "볼륨" 세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렸다.

작은 변화들이었지만, 엄마는 조금씩 편해하셨다.

그리고 나는 배워갔다.

환경을 바꾸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병원에서는 아무도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다.

“약 잘 챙겨 드세요.”

“바깥 활동을 늘려야 해요.”

“일기를 써 보면 좋아요.”

의사들이 건네는 조언들은 원론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치매 환자와 함께 살아보면 알게 된다.

진짜 어려운 건 약이나 운동이 아니다.

“어디다 뭐를 두어야 덜 헷갈리실까?”

“어떤 말투가 엄마를 불안하지 않게 할까?”

“집이라는 환경이 어떻게 기억을 돕거나 방해할까?”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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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막막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의학 논문이나 예방법뿐이었다.

정작 알고 싶은 건

“이사 후에 엄마가 덜 혼란스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려면 어떤 걸 바꿔야 할까?” 같은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그래서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던 방법, 실패한 시도, 그리고 그 사이의 깨달음들.

엄마와 부딪히며, 배우며, 천천히 알아갔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매일 관찰하며 얻은 배움.

우리 집만의 실제 사례들이다.


혹시 지금 당신도 고민하고 있는가?

부모님을 가까운 곳으로 모실까?

새 집으로 모시면 더 헷갈려하시진 않을까?

아니면 이미 이사하셨는데, 적응이 너무 힘들어 보이는가?

괜찮다. 나도 그랬다.


이제부터 나눌 이야기는 의학 지식이 아니다.
엄마를 가까이 모시고 함께 살아보며 부딪히고 실패하고,
조금씩 방법을 찾아간 여정의 기록이다.
집 안 환경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어떤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드는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지.
그런 이야기들이다.

당신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
완벽한 해답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가를 돌보며 같은 길 위에 서 있다면
이후의 글들이 그 길을 조금 덜 외롭고, 덜 막막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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