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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지킬 차례

여전히 같은 자리의 사랑

by 공감수집가

만화를 참 좋아했다.

맞벌이 부모에 외아들인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로 만화책을 보거나 TV 영화를 보는 게 낙이었다.

방학이면 오전 10시, 유선방송으로 나오는 국내 애니메이션을 기다리곤 했다.


그해 여름, 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렸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책받침도 나눠준다고 했다.


책받침

잔뜩 기대하고 줄을 섰다.

30분을 기다렸는데, 그만 내 앞에서 뚝 끊겼다.

"죄송합니다. 물량이 다 소진됐어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엄마는 부탁조로 말씀하셨다.

"아이가 이렇게나 기다렸는데 혹시 하나만 더 없을까요?"

관계자는 단호했다.

"물량이 정해져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뒤돌아 가던 중이었다.

뒤에서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한 엄마가 으름장을 놓고 따지니 문제의 그 책받침을 주는 거다.

엄마는 화가 나서 달려갔다.

"아니. 아까 내가 얘기할 때는 없다더니. 어떻게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줘요?"

"저분이 너무 떼를 쓰셔서... 뒤에 분들도 많고... 죄송합니다."

담당자가 쩔쩔맸다.

창피했다.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빨리 극장 안으로 숨고 싶었다.

그땐 몰랐다. 화내던 엄마의 모습이 그리워질 줄은.


자신감

최근 몇 년간 엄마는 자신감이 부쩍 떨어지셨다.

자신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뒤다. 하지 않아도 될 사과를 하고, 내 짜증 앞에 한껏 수그러든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마트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고 있을 때였다.

우리 앞으로 갑자기 뛰어든 한 아주머니.

엄마가 나긋하게 말했다.

"뒤에 줄 서세요"

"달랑 2개인데 먼저 좀 할게요!"

되레 소리를 지른다.

엄마는 더 이상 따지지 않으셨다. 그냥 입을 다무셨다.

내가 나섰다.

"뒤에 서시죠."

"아니, 물건도 몇 개 없고. 금방인데."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이세요?"



역할 전환

난 부정적인 아이였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못 살아?"

"아빠는 왜 집에 잘 안 들어와? 주말에도 집에 없고."

"대학? 합격한들 입학금이나 제대로 낼 수 있을까?"

그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우리보다 어려운 집도 많아. 엄마만 믿어. 엄마 아직 젊잖아."


긍정의 아이콘이었던 엄마.

친구 관계도 하나둘 끊기면서 울적해하는 날이 늘었다.

"30년을 넘게 쉬지 않고 일했는데. 아직도 허우적대니 사는 낙이 없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다.

"엄마, 저 아직 젊잖아요. 엄마는 이제 건강만 생각하면 돼요. 빚도 거의 다 갚았고. 저축해서 다 같이 여행 다녀요."

이제는 내가 엄마의 손을 잡아드릴 시간.jpg 성인이 된 뒤 엄마 손을 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병원에 함께 갈 때면 엄마는 내 뒤를 따라온다.

접수하는 것도, 약 받는 것도, 다음 진료 예약하는 것도 이제 내가 한다.

"여기 앉아 계세요. 제가 할게요."

"미안하다. 엄마가 짐만 되네."

"무슨 소리예요. 엄마가 나 키울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의 사랑

엄마는 항상 나를 지켜주셨다.

책받침 하나 때문에 담당자에게 따지던 날도, 내가 아플 때 달려오시던 날도,

내가 세상을 원망하던 사춘기에도,

엄마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트 계산대에서도, 병원에서도, 누군가 엄마에게 함부로 대할 때도.

이제는 내가 엄마의 손을 잡아드릴 시간이다.

사람의 역할은 변해도, 사랑의 자리는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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