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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야 산다는 마음으로

이제 정말로 잊어가는 엄마

by 공감수집가

엄마는 참 잘 잊는 사람이었다.

상처를, 배신을, 억울함을.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또다시 퍼줄 수 있을까.

지금은 안다. 엄마는 잊은 게 아니었다. 살기 위해 잊어야 했던 것이다.


한낮의 빙판길

8살이었던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살벌한 빙판길을 조심히 걷고 있었다.

"어맛!!"

엄마는 별안간 날아온 눈덩이에 맞아 꽈당하고 넘어졌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던 중이었다.

잡아끌었으나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눈뭉치 주인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달려와 울먹거리며 엄마 옆에 섰다.

옆옆집에 사는 쌀집 아저씨 아들이었다.

그제야 벌떡 일어나시더니 놀란 아이를 다독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빙판길 조심해라."

다음 날 엄마는 생애 첫 당일 결근을 했다. 지각, 결근 한 번 없던 참 직장인이었던 엄마. 밤새 허리 찜질에 파스까지 동원했건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게다.

옆집 아주머니께서 한마디 거들었다.

"어제 애들 때문에 빙판길에 벌러덩 넘어졌다며? 그 집 찾아가서 병원비 내놓으라고 따져야 하는 거 아냐? 파스로 될 상태가 아닌데?"

"아유, 괜찮아요. 애들 놀이에 무슨."

참다 참다 결국 병원에 가셨고, 갈비뼈에 금이 가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의 눈물

"엄마랑 어디 좀 가야겠다."

2시간을 넘게 달린 버스에서도 아무 말씀이 없었다. 창밖으로 내다본 풍경은 낯선 동네였다.

물어 물어 한참을 걷다가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섰다.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

엄마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부스 밖으로 고함치고, 급기야는 "제발, 제발" 부탁하던 엄마의 흐느끼는 목소리.

나중에 안 사실. 믿었던 친구에게 빌려둔 돈을 돌려받지 못해 대책도 없이 찾아갔다.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한 나절을 서성였고, 어렵게 연락이 닿았는데 매몰차게 차인 것이다.

당시 빌려준 돈은 지금으로 따지면 차 한 대 값이었다고 한다.

가끔 그때 얘기를 하면 엄마는 말한다.

"나쁜 애는 아닌데. 정말 절박했나 봐."

그날의 눈물과 서러운 기억은 내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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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냉장고

IMF로 모두가 허덕이던 때에 막내 고모가 결혼했다.

5남 3녀 중 셋째 며느리였던 엄마는 남편과 열댓 살은 차이 나는 막내 고모를 안쓰러워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그 많던 형제는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엄마는 막내 고모 혼수를 혼자 감당했다.

아울렛 매대에서 잡았다 놓았다 했던 가디건 값을 아끼고, 버스 몇 정거장을 걸어서 아낀 차비를 몽땅 털었다.

남편이 이쁘면 그 동생에게 뭘 퍼다 주더라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 남편은 술에 폭언에 세상 탓만 하는 등 몸도 마음도 나약한 남자였다. 그런 남편의 동생에게 새 가전, 가구를 풀세트로 선물했다.

수년 뒤 돌아온 그 냉장고. 살림을 줄이면서 이사한 좁은 집에 딱이라며 막내 고모는 쓰던 냉장고를 우리에게 돌려 주었다. 안에 들어가 있던 뚜껑 열린 반찬통의 냄새와 얼룩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의 사는 법

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 반에서 제일 부잣집 친구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엄마는 값비싼 피자를 시켜줬다. 집 밖으로 나갈 때면 용돈을 쥐어줬다.

"네가 사줘."

"왜? 상연이가 우리 집보다 훨씬 잘 살아. 쟤한테는 얻어먹어도 돼."

"너무 그러지 마. 부모가 돈 때문에 자주 싸워서 그런가. 너는 그래도 베풀며 살아. 그렇게 사는 게 맘 편해."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해가 안 됐다. 받은 용돈은 다른 곳에 썼다.


성실과 신의를 최고로 알고 살던 엄마.

남의 돈을 빌리면 악착같이 갚고, 남이 돈을 빌리면 그 입장이 됐다.

퍼준 대가는 형편없었다.

속상해서 몇 날 밤을 뒤척이며 흘린 눈물을 아는데.

상처 투성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잊어야만 했던 그 눈물이 모여 습관이 된 걸까.

엄마는 살기 위해 잊었을 거다.


지금 엄마는 진짜로 잊어가고 있다.

오늘 날짜를, 방금 한 말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눈물과 배신과 억울함도 함께 잊어가는 것 같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다행인 일일지도 모른다.

평생 잊으려 애썼던 것들을, 이제는 정말로 잊을 수 있게 됐으니까.

하지만 나는 기억하려 한다.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엄마가 왜 그렇게 잊어야만 했는지를.

그리고 그 '잊는 법'이 사실은 엄마만의 '사는 법'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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