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째 반복되는 그 이야기
축제의 달이었다.
징검다리 휴일을 앞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녁 산책을 즐기던 중이었다.
이때 걸려온 모르는 전화번호. 낯선 남자의 목소리.
"아드님이신가요?"
심장이 철렁. 무슨 일이 터졌구나.
"네? 무슨 일이시죠?"
"아, 여기 어머님이 전화기를 잃어버렸다고 하시네요. 여기가 시장 쪽 롯데아파트 정문 앞인데요."
꽤 구체적으로 위치를 설명해 주셨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 집에서도 꽤나 먼 거리였다.
'무슨 일이지? 거긴 왜? 휴대폰은 어디서 잃어버리셨길래.'
멀리서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
"여기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아들 집에 가면 안 되는데."
주소를 확인하고 곧장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택시로 이리 오게 하시면 어떻겠냐는 아내의 말.
잘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 전화도 받을 수 없는 엄마를 찾는 것은 진땀 뺄 일이다.
감사하게도 중년 남성은 택시까지 잡아주셨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친절한 행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밤거리를 배회하며 밤새 연락도 안 되고. 아니 연락할 생각조차 못 했을 거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오는 엄마의 말.
"미안하다."
상황은 알고 계신 걸까. 아내와 사이좋게 엄마의 양팔에 한쪽씩 팔짱을 끼우고 걸었다.
무슨 일인지 당장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들 집에 왔음에도 겉옷도 벗지 않고 가방을 꼭 쥐고 있는 있었고, 껌뻑 죽는 손자의 애교 앞에서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모습까지. 엄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식사부터 했다. 엄마는 괜찮은 듯 식사를 하셨다.
식사 후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다그치지 말아야지.'
부질없는 다짐이었다.
"내가 얘기했나. 일하는 곳에서 내 가방을 훔친 도둑이 잡혔는데 알고 보니 같이 일하는 언니 아니겠어."
또 시작이다.
"반장한테 얘기했더니 관리소장이 노발대발하잖니. 이러다 청소 용역 업체 싹 다 바뀌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
"나한테 밤길 조심하라는 거야. 관리소장이 집까지 쫓아와서 자꾸 겁을 주잖아."
엄마의 목소리가 떨린다.
"자꾸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지 않나. 새벽에 현관문도 두드리고. 젊은 남자 두 명이 자꾸 집 근처를 기웃거려."
"그래서요?"
"위치 추적 당하지 않으려고 핸드폰은 집에 두고 현금만 찾아서 미용실 친구네로 갔어. 미용실 쪽방이 있거든."
"..."
"3개월 뒤에 용역 업체 바뀌면 다시 복직시켜 준다니까. 3개월만 친구한테 신세 지려고."
"그래서 친구는 만났어요?"
"아니. 오늘따라 일찍 문을 닫았나 봐."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가만있어 봐. 아차 핸드폰을 두고 왔구나."
6개월째 듣는 스토리다.
미용실 친구의 연락처도 상호도 알 수 없다. 사실 확인을 하고 납득시켜도 다음 날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몹쓸 기억. 카드나 통장이 어디 있는지는 잊어버리고, 약 먹는 것도 깜빡하지만, 그 상상만큼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깊이 새겨진 문신처럼.
엄마는 진심으로 무서워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 불안한 눈빛. 그 공포는 진짜였다.
다만 그 공포를 만든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내일 다시 확인해야겠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