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통에 담긴 식혜

치매 엄마와 나, 서로 다른 우주

by 공감수집가

엄마가 오랜만에 식혜를 해주셨다.

평소 식혜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고두밥을 찌고 엿기름을 걸러 긴 시간을 정성으로 채우셨을 것이다. 하지만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식혜 병을 마주한 순간, 나는 반가움보다 당혹감에 휩싸였다.

식혜가 담긴 페트병 겉면에는 '요소수'라는 선명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병을 자세히 살폈다.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함에서나 볼 법한 낡은 페트병들이었다. 깨끗이 씻었다고는 하지만, 화학 물질이 담겼던 통에 음식을 담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에게 주려고 분리수거함을 뒤져 병을 골라오고, 그걸 몇 번이나 씻어 식혜를 담았을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지만, 동시에 머릿속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냥 잘 먹었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버릴까?'

아니면,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단호하게 말씀드려야 할까?'

고민 끝에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앞으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엄마의 이 위험한 재활용을 막아야만 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입을 뗐다.

"엄마, 이거 분리수거함에서 가져오신 병이죠? 요소수 통은 화학 성분이 남아서 씻어도 위험해요. 여기다 담으시면 안 돼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것은 미안함이나 깨달음의 눈빛이 아니었다. 거대한 서운함이 뒤섞인 불꽃이었다.

"내가 내 새끼한테 더러운 걸 먹이겠냐! 며칠 동안 물을 담아 놓고 몇 번을 씻어서 한참을 헹궜는데, 그게 왜 더러워!"

엄마는 노발대발 역정을 내셨다.

내가 설명하려는 페트병의 위험성이나 위생 같은 논리는 엄마의 세계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엄마에게 그 식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재료를 넣고, 당신의 지극한 정성으로 씻어낸 '사랑' 그 자체였다. 그런 식혜를 '위험물' 취급하는 아들의 말은, 엄마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요소수 식혜.jpg


치매라는 병은 이토록 잔인하다.

대화의 초점이 영원히 맞지 않는 평행선 위에 우리를 세워둔다. 위생과 안전이라는 '이성'의 궤도를 달리는 나와, 오직 정성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궤도만을 달리는 엄마.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었다.

"다시는 아무것도 안 해줄 테니 네 마음대로 해라!"

결국 엄마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는 요소수 통에 담긴 달콤한 식혜와, 차마 마시지 못한 채 남겨진 안타까움만이 덩그러니 놓였다.

엄마의 사랑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는데, 그 사랑을 담아내는 상식의 그릇은 이미 금이 가 깨져버린 상태였다.


나는 집으로 가져온 식혜를 모두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끈적하고 달콤한 냄새가 하수구로 흘러내려 갔다. 안타까움과 화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 순간 나의 이성이 말했다.

'유리병을 주문해서 다음에는 그걸로 담아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페트병은 위험해요"가 아니라 "유리병이 더 안전해요"라고 말하면, 엄마도 덜 서운해하실 텐데.


내일 아침이면 엄마는 다시 식혜 이야기를 꺼내실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저, 식혜가 참 달았다고, 다만 다음에는 유리병에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상식보다 중요한 것은, 무너져가는 엄마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지켜주는 일이니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