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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생각보다 짧다

by 공감수집가

결혼 3개월 차 후배와 점심을 먹었다.

"수석님은 정말 가정적이신 것 같아요. 양가 부모님들과 시간 많이 보내세요?"

"신혼 때는 정말 자주 뵈었죠. 지금도 친구 부부들에 비하면 자주 뵙는 편인데, 사실 저도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진심으로 집에 놀러 오시라고 할 때가 있고, 때로는 솔직히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고요."

"처가 쪽 부모님이 며칠씩 계시면 불편하진 않으세요?"

"물론 아내와 갈등도 있었죠. 우리끼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몇 년 전부터 적정 간격을 두려고 노력했어요. 자주 뵙는 게 당연해지다 보니 양가 어머님들이 섭섭해하신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왜? 혹시 어려운 점이 있어요?"

후배가 잠시 망설이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상황을 털어놓았다.

"사실...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빨리 아이도 갖고 싶고, 맞벌이다 보니 가까이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처가 댁 바로 옆 동에 신혼집을 잡았거든요. 그런데 주말마다 뵙고 식사하고, 늦으면 새벽까지 술도 마시고..."

후배가 쓴웃음을 지었다.

"장인어른께서 술을 좋아하세요. 따라가기 버거워요."

"너무 가깝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본가는요?"

"본가도 차로 10분 거리예요. 저희 부모님도 며느리 보고 싶어 하셔서 주중에도 놀러 오시고요.

이거 복인 거죠?"

복이라고 말하는 후배의 눈빛은 살짝 지쳐 보였다.

후배의 표정에서 나는 14년 전 신혼 시절의 내 모습을 보았다.

"나 신혼 때 상황이랑 비슷하네요. 그 마음 충분히 알 것 같아요."

"아이 낳으면 신세도 많이 지게 될 텐데... 이게 결혼인가 싶기도 하고. 제가 너무 이기적인 가요?"



건강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유한함

너무나 공감이 되는 대목이라 신중하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나 역시 가족 간에도 적정한 간격은 필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부부만의 독립된 공간과 시간은 중요하죠."

후배가 조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은 있어요."

"네?"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신 상태로 우리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거."

후배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제수씨랑 충분히 대화하고, 두 사람의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판단하는 게 중요해요. 무조건 끌려가면 두 사람 모두 지칠 테고, 반대로 너무 관계를 끊어내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거든요."

이어서 말했다.

"자주 뵙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깐 뵙더라도 부모님께 진심으로 대하면 되지 않을까요?"

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늑한 카페에서 장모님과 함께 한 어느 평범한 주말 오후. 작은 시간도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이 선물이다

이전 글에서 숱하게 고백했듯이 엄마의 치매 판정 이후로 후회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올해 2월에는 장모님도 췌장암 2.5기 판정을 받으셨다. 항암만 11 차례에 수술까지. 정말 정말 아프셨다.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시는 걸 사는 낙으로 삼으시던 장모님이다. 개인주의적 성격의 사위를 둔 탓에 혹시나 눈치를 본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생각할 때마다 너무 죄송하다.

양가 어머님 모두 혼자 지내시는 우리 집 상황이 조금 특별할 수 있다.

아들 집, 딸 집에 오고 싶은데 얼마나 눈치를 보셨을까.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는 몰랐다.

시간이 무한할 줄 알았다. 불편하면 거리를 두면 되고, 나중에 뵙겠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치매 판정, 암 판정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나중에'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지금 부모님과 보내는 이 순간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는 것.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집에 놀러 오신다는 것.

이 모든 게 당연하지 않다.


언젠가는 전화를 걸어도 받지 못하는 날이 온다. 밥을 같이 먹고 싶어도 함께할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때 우리는 후회한다.

"좀 더 자주 볼걸."

"좀 더 친절하게 대할걸."

"좀 더 마음을 다할걸."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나중에'는 짧다.

지금, 이 순간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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