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의 부모님에 비해 젊었고 늘 활기찼던 엄마.
그래서 엄마는 영원히 젊은 엄마일 거라 생각했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친구가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 했어. 맨날 용돈만 달라고 했지. 이번 방학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선물 사드리려고 했는데..."
친구의 뒤늦은 후회를 보면서 다짐했다.
나는 엄마에게 표현하리라.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짐은 흐려졌다.
낯 뜨거워서, 쑥스러워서,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뒷순위였다.
주말이면 친구들과의 약속이 먼저였다.
선배 결혼식, 동호회 모임, 동창회. 엄마보다 먼저인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아내가 가끔 말했다.
"어머님께 너무 연락 뜸한 거 아냐? 이번 주에 한 번도 전화 안 드렸잖아."
"아, 맞다."
그제야 전화를 걸었다.
"엄마, 식사하셨어요? 별일 없죠?"
"응, 잘 지내고 있어. 너는 회사 일이 바쁘지?"
"저도 잘 지내요. 회사 일이야 뭐 늘 똑같죠."
길어야 40초. 짧으면 20초. 통화는 무미건조했다.
엄마에게 회사 일이나 최근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설명해 봤자 이해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궁금할 게 없었다.
엄마의 치매 진단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엄마와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처음에는 두려웠다. 엄마가 나를 잊으면 어떡하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잊기 전에, 내가 엄마를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걸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어떤 노래를 즐겨 듣는지, 젊었을 때 무슨 꿈을 꿨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시작했다. 엄마를 알아가는 시간.
어느 휴일 오후, 용기를 내서 물었다.
"엄마, 카페 갈래요? 우리 둘이서."
"갑자기? 왜?"
"그냥요.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해요."
카페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는데 엄마가 머뭇거렸다.
"뭐 드실래요?"
"글쎄...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네."
"달달한 걸로 드실래요?"
"아메리카노 먹어 볼까?"
"엄마, 아메리카노 드실 줄 알아요?"
"가끔 먹으니까 괜찮더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젊었을 때 뭐 하는 거 좋아하셨어요?"
"나? 나는... 책 읽는 거랑 음악 듣는 거 좋아했지."
"무슨 책이요?"
"시드니 셀던 책은 죄다 본 것 같아. 카펜터스도 좋아했고. 그때는 라디오로 들었는데 정말 좋았어."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야기였다.
엄마도 젊었을 때 설레고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구나.
"시드니 셀던 책을 구해볼까요?"
엄마 집 근처 공원을 천천히 걷는다.
"엄마, 오늘 날씨 좋죠?"
"그러게. 바람도 시원하고. 아들이랑 나오니까 더 좋네."
"저기 아파트 장터에서 옥수수 파는데 하나 드실래요?"
"그럼. 좋지."
"우리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들을 한다. 그리고 엄마의 대답을 귀 기울여 듣는다.
산책을 하다 보면 엄마가 같은 말을 반복할 때가 있다.
"이제 이 동네도 익숙해졌어. 여기서 저기까지 매일 같이 걷거든. "
5분 뒤 또 말한다.
"내가 여기서 저기까지 매일 걷는 길이야."
예전의 나였다면 짜증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반응한다.
"정말 걷기 좋네. 동네에 이런 산책로가 있어서 얼마나 좋아요."
엄마가 그 길이 예쁘다고 느끼는 마음은 진짜다.
5분 전에 말했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지금 이 순간 예쁘다고 느끼는 건 진심이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가장 어려웠던 건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다. 40년 넘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들이었다.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착한 며느리에 이쁜 손주도 안겨드려서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자식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엄마, 오늘 옷 예뻐요."
"갑자기 왜 그래?"
엄마도 어색해했다. 하지만 기분은 좋은 것 같았다.
헤어질 때도 연습한다.
"엄마, 여기서 인사할게요. 사랑해요."
"... 그래, 나도 사랑한다."
요즘은 전화할 때도 다르게 물어본다.
"엄마, 오늘 기분은 어때요? 몸은 좀 어때요? 밥은 뭘로 드셨어요?"
"응, 된장찌개 해 먹었지. 너는?"
"잘하셨네요. 저야 늘 잘 챙겨 먹죠."
"... 그래."
엄마는 쑥스러워하지만, 통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이제는 2분, 3분. 가끔은 5분도 넘는다.
치매는 나에게 가르쳐줬다.
엄마와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안에 엄마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
덕분에 나는 이제 안다.
엄마가 가끔은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것. 옛날 노래 들으면 행복해한다는 것. 공원 산책로를 걸을 때마다 예쁘다고 감탄한다는 것.
카페 메뉴판이 어렵다는 것. 유튜브 켜는 게 힘들다는 것. 같은 말을 반복해도 그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
그리고 아들과 단둘이 사진을 찍는 것이 엄마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도 안다.
치매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엄마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한 아들은 될 수 없다. 여전히 짜증도 나고, 비교도 하고,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와 함께 걷는 이 시간이,
같은 말을 들어주는 이 순간이,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이 어색함이,
모두 선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