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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척해야겠구나" 치매 엄마의 장기요양등급 신청

by 공감수집가

엄마는 결국 일터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셨다.

엄마는 일하기를 원하셨고 우리도 응원했다. 종종 먹거리를 들고 일터에 찾아갔고 동료분들과 잘 지내시길 바랐다. 하지만 잦은 실수와 망상은 생각보다 큰 핸디캡이었다.

더 이상 일을 하시는 건 무리라고 결론 내렸다. 아내의 권유로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알아봤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장기요양등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아볼수록 이 제도가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신청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방문하거나, 모바일 앱 'The 건강보험'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필요 서류(신청서, 신분증, 의사소견서 등)를 제출하고 기다리면, 20~30일 이내에 방문 조사와 등급 심사가 이뤄진다.

내 경우엔 이틀 만에 담당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세한 설명과 안내 덕분에 막막함이 많이 사라졌다.


등급 심사를 앞두고, 엄마에게 혜택과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엄마는 일부러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좀 더 못난 척해야겠구나."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아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을 것이다. 하지만 70도 안 된 나이에 이런 심사를 받아야 하는 기분이 어땠을까. 자신이 누군가의 '돌봄 대상'이 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담당자가 방문 전 전화로 물었다.

"어머님, 대화는 가능하시죠?"

"네. 어느 정도는요.

어느 정도라니. 엄마는 망상만 빼면 괜찮은데. 등급을 의식해서 그렇게 대답한 걸까.

방문 심사가 끝난 후 엄마가 말했다.

"엄살을 좀 피웠어. 등급 받으면 니들한테 좋을 테니까."

치매 판정을 받으면 대부분 5등급 이상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는 '못난 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말에 가슴이 시렸다.


장기요양등급, 이런 혜택이 있다

첫째, 집에 찾아오는 전문 돌봄 서비스가 있다.

방문요양, 방문목욕, 방문간호, 주야간 보호, 단기보호까지. 집에서 편안하게 신체 활동과 일상생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엄마는 아직 혼자 걷고 움직이지만, 누군가 손을 잡아주고 돌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둘째, 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

흔히 '노인 유치원'이라 불리는 시설이다. 동년배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어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셋째, 복지용구가 지원된다.

이동변기, 지팡이, 요실금 팬티, 휠체어, 전동침대 등 생활의 불편함을 줄여주는 용구들이다. 실제 이용까지 갈 길은 멀지만, 손쉽게 신청하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힘이 된다.

넷째,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본인 부담금이 6~15%에 불과해, 고비용의 의료·요양 서비스를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엄마의 선택

엄마는 예상대로 5등급을 받았다.

누리게 될 혜택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양부모 모두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이런 절차를 밟았다는 점이 씁쓸했다.

가장 먼저 노인 유치원을 제안했다. 하지만 엄마는 거부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

그 마음이 이해됐다. 홈페이지나 수기에서 찾아본 어르신들의 상태에 비하면 엄마는 너무 젊고 활력 있다. 나 역시 그 시설에 가서 쉽게 동화되고 진행이 더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엄마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대신 요실금 팬티나 미끄럼 방지 용품처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먼저 신청하기로 했다.


엄마의 자존심

생각해보면 두 말은 같은 뜻이었다.

아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못난 척은 할 수 있지만, 자신이 환자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면, 나는 그 자존심을 지켜드리고 싶다.

등급의 숫자, 혜보다 엄마가 지키고 싶은 것. 그걸 함께 지켜주는 게 가족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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