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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메르트리 Jan 17. 2024

07. 엄마, 나 중2병 치료하러 가자

사춘기는 두려운 게 아니야

밥 먹는 중에 범이가 연신 기침을 합니다.

며칠 동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컨디션 회복이 더디네요.

"범아, 밥 먹고 엄마랑 병원 한 번 더 다녀오자."

그러자 갑자기 범이가 "엄마, 나 중2병 치료하러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중2병?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인 범이가 중2병이란 단어를 어떻게 아는지도 신기할뿐더러, 도대체 무슨 고민이 있나 그러는 건지... 순간 온갖 생각들이 섞이는 거 있죠. 

잘못 들었나 싶어 "중2병? 너 중2병을 알아?"라고 물어보니

"응~ 나 중2병이잖아. 이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얘가 언제 이렇게 성숙했지?'

요새는 초등학생들도 사춘기를 빨리 겪는다더니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아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이제 마냥 엄마품 찾는 아들은 못 보는 건가. 이제 곧 방문 쾅 닫고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건가 갑자기 소름이 돋는 거 있죠. 전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무서워졌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어떤 일인지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요. 가까이 바짝 붙어 앉았더니 범이가 말해요.


"귀가 너무 답답해. 빨리 치료해서 낫고 싶어."

이런~ 중2병이 중이염이었어요. 

제가 온갖 심각한 생각에 사로잡힌 게 민망할 정도로 아이는 맑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네요. 

'엄마 왜 그래?' 하는 눈빛으로요. 역시 범이는 아직 중2병이라는 걸 모릅니다. 아직 마냥 귀여운 꼬마입니다. 휴, 다행이에요.


목감기와 중이염이 오해를 낳을 뻔했네요. 

"너, 중이염 말하는 거지?ㅎㅎ"

"응~ 아 맞다 맞다! 그 중이병, 아니 중이염."

그러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에요. 중이염도 중이에 생기는 중이병이네요.

"빨리 먹고 귀 치료하러 가자~!"

"응"

우리의 대화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부쩍 요즘은 범이가 제법 컸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생각이 꽤나 구체적이고 깊어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귀여운 맛이 사라지고 있지요. 논리가 생기면서 따박 따박 말대답도 찰지게 합니다.

문득 중2병이 예고도 없이 찾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이른 감도 없지 않지만, 아들의 반항(?)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할 것 같습니다.




아들이 자라남에 따라 엄마의 역할도 끊임없이 변하고 고민은 계속됩니다.

우리 아들도 언젠가는 사춘기를 맞이하겠지요.

지금보다 더 짜증 내고 더더욱 시크해지겠지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봅니다.

 

그러나 모든 중2가 그러지 않는다는 걸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느꼈습니다. 그 힘들다는 중2도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지내는 아이들도 많더라고요. 그리고 그 아이들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부모님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아이를 믿고 지지해 주며 긍정 관계를 형성하는 엄마, 작은 고민거리도 함께 나누는 아빠가 그 힘들다는 사춘기를 함께 이겨내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집 두 아들도 언젠가는 올 그 시기를 유연하게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변함없는 믿음을 가져보겠습니다. 아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진심을 다해보겠습니다. 단단한 마음으로 스러지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 함께 손 잡고 나아갈 수 있는 엄마가 되길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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