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상을 하루라도 더 누리길 바라는 마음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마음도 차분해지고 유난히 조용한 오전입니다.
사부작사부작 할 일을 조금 해 놓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마칠 시간이 되었겠지?' 생각하는 찰나 오늘도 어김없이 핸드폰이 울립니다.
첫째 아들 범이의 전화입니다. 수업이 끝났나 봅니다.
전화기 너머 시끌벅적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아들의 한껏 들뜬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엄마~ 나 수업 끝났어! 친구들이랑 놀아도 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에게 전화해서 하는 첫 멘트입니다. 어쩜 이렇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하는지 가끔은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서빈이네 집에 가기로 했어. 서빈이 엄마가 허락하셨어~"
"다른 친구들도 간대?"
"응"
"그래, 재밌는 시간 보내고 와. 비 오니까 조심하고~"
"네에~!!"
날씨 탓일까요.
오늘따라 이 평범한 대화에서, 아들의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행복감에 전화를 끊고도 잔여운이 한동안 저를 감쌌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아들이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음에.
그것이 매일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음에.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을 들을 수 있음에요.
어릴 적 저는 만화영화가 시작하는 저녁 6시까지 밖에서 발이 시커메지도록 놀던 소녀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요. 엄청난 말괄량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단 꽤나 활발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였답니다.
제가 초등학생 시절 살던 아파트는 열두 동이 있는, 그 당시에는 대단지라고 불릴만한 곳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아파트 단지가 꽤나 넓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온 동네가 저의 무대였습니다. 1동부터 12동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숨바꼭질을 열심히도 했더랬지요.
얌전히 앉아서 노는 인형놀이는 이상하게 좀이 쑤셨어요. 아파트 풀숲을 헤치며 방아깨비를 잡고 씽씽을 타고 달리며 지치지도 않고 놀았습니다.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 지금 떠올려도 좋습니다. 참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이제 과거의 천방지축 소녀의 아들이 그 나이가 되었네요. 범이가 친구들과 지내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자라면서 큰 버팀목이 될지를 알고 있기에, 아직은 조금 더, 조금 더 이 시간을 즐기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요즘에는 방과 후에 놀 친구가 없어서 학원을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제 친구의 딸은 유치원생임에도 불구하고 하원하고 놀이터에 친구가 없어 발레 학원, 미술 학원을 간다고 해요. 다들 하원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이것저것 배우러 가버리니 심심해하는 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요.
저도 작년까지는 일을 하는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이를 방과 후 수업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참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올해는, 제가 집에 있는 동안에는, 그러지 않아도 됨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또, 아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이 있음에도 감사합니다.
"엄마~ 나 수업 끝났어! 친구들이랑 놀아도 돼?"
"그래~ 재미있게 놀다 와! 조심하고~!"
전 범이와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이 통화가 너무 좋습니다.
범이가 매일 즐거움을 표현해 주어서 좋고, 감사함을 표현해 주어서 좋습니다.
이 별것 아닌 대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마도 조금 더 크면 이마저도 그리운 순간이 올 것을 알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당연한 일상이 어느 순간 당연한 일상이 아닌 것이 될 것을 알기에, 이렇게 짧은 기록으로 남기며 이 순간을 기억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