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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메르트리 Jan 03. 2024

04. 대륙과 섬

내가 만드는 기준에 많은 것이 달라진다

어느 따뜻한 일요일 우리 가족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티셔츠 안 상표에 'Made in Malaysia'라고 적혀 있는 걸 본 범이는 "난 말레이시아가 좋아."라고 말하더라고요. 최근 2주 동안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기에 더욱 반가웠나 봅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간다는 것은 나와 그곳 사이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것도 나의 경험과 관련지어져서 친숙하게 느껴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요. 그런 점에서 여행은 그 무엇보다 값진 배움인 것 같습니다.


범이도 그런 계기로 말레이시아와 친해졌습니다. 덕분에 장난감처럼 빙빙 돌리며 가지고 놀던 지구본을 유심히 보게 되었고요. 동그란 지구에 펼쳐진 땅과 바다, 작은 섬들. 작은 곳까지 놓치지 않고 유심히 봅니다. 관심 가는 지역은 구글 지도에 검색해 보고요, 확대해서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으니 더없이 좋습니다.


"엄마, 근데 결국 모든 대륙은 섬이야, 섬! 대도!"

"그게 무슨 말이야?"


옷을 갈아입다 생각이 이어진 범이는 머릿속에 세계 지도를 떠올렸나 봅니다. 지구 표면의 70%를 이루고 있는 바다는 배경을 이루고 그 위에 규칙적이지 않은 제멋대로 생긴 땅이 때로는 커다랗게, 어떤 곳은 자그맣게 떠다니고 있는 지도를요.


"엄마, 여기 봐봐~ 아프리카도, 아메리카도 결국 대륙들도 바다로 둘러싸여 있잖아. 그러니까 섬이야 섬."


제주도도, 울릉도도, 이웃나라 일본도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에요.

그런데 지도를 멀리서 보니 아프리카 대륙도, 아메리카 대륙도 전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범이 입장에서는 섬이라고 생각이 된 거지요.


"우와~ 진짜 그러네. 일본, 영국 같은 나라는 섬이라고 부르는데 왜 아프리카는 섬이라고 안 할까?"



 

대륙과 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태초에 대륙과 섬으로 구분 지어 땅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연유로 이렇게 구분 지어 인식하게 된 걸까요?


이는 국제적으로 정의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 간의 약속인 거지요. 면적 순으로 호주부터 대륙으로 부른다고 해요. 따라서 호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고, 그 면적을 기준으로 호주보다 크면 대륙, 작으면 섬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어떤 합리적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가만히 살펴보면 대륙과 섬을 가르는 것처럼 주변에는 사람이 만든 기준이 꽤나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믿는 것이 실은 사람이 만든 기준 위에 정의되는 것들이지요. 만약 시험 문제에서 '호주는 섬이다'라고 쓰면 틀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주 땅이 가지는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하기에 정한 기준일 뿐 이는 오차 없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면 빈틈없이 꽉 찬 마음 한편에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 듭니다. 그 작은 틈으로 생각이 자라나 뻗어나가고 '왜?'라는 물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한 번 비틀어 발상의 전환을 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기준이 바뀌면 섬이 대륙도 될 수 있고, 대륙이 섬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함께 정하는 약속은 쉽게 바꿀 수 없지만 혼자 정하는 약속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요.

아침에 일어나 신문 읽기의 기준이 '모든 기사 완독하기'라면 저는 오늘 실패했어요. 그런데 그 기준을 '기사 다섯 개 정독하기'라고 한다면 성공이에요. '매일 한글 파일 두 페이지 분량 글쓰기'가 기준이라면 저는 연속 일주일을 실패했지만 '어떤 형태의 글이든 하나 쓰기'를 기준으로 정한다면 전 매일 성공했어요.


만약 내가 설정한 기준에 실패하는 날들이 쌓여가고 있다면 그 기준을 살짝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기왕이면 계속되는 실패보다 작은 성공을 쌓는 날들이 나를 더 살아있게 만들 테니까요. 매년 1월이 되면 저는 늘 계획을 짜요. 새벽에 일어나기, 운동하기, 독서하기, 자기계발하기 등은 매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지요. 6시에 일어나기, 1시간 운동하기, 1시간 독서하기 등... 그 기준이 늘 문제였습니다. 중간 과정이 전혀 없는데 마치 1월 1일이 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초인이 될 것만 같거든요. 너도나도 그렇게 하니까 그 기준이 국제적으로 정의된 기준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범이의 말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만의 대륙과 섬,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은 내가 정할 수 있고 그것이 절대적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계적으로 기준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으니 계속되는 좌절의 경험보다는 시나브로 쌓는 성공의 경험을 스스로 선물해 줄 수 있어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나만의 성공 기준에 닿은 하루를 쌓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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