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시대, 개인으로 잘 사는 방법
아직도 목마른 시대다.
한국 전쟁 이후 1960대라는 산업화의 격변기를 거쳐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제조업 중심의 시대에서 지식산업 중심의 시대로 완전한 변환기를 맞았다. 제조업 중심의 시대의 큰 특징은 기계적 삶이다. 개개인의 자유보다는 집단의 생존이 중요한 시대였기에, 개인으로 존재하지 못한 개인의 종말의 시대였다.
전 세계가 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이러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집단에서 개인의 시대로 넘어 오기 시작했다. 집단 중심의 과거에는, 집단에 속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으나, 이제는 집단 자체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한다고 믿는 개개인이 늘어나고 있다.
마침 기술의 발달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다양한 매체의 출현으로, 개인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본인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런 시대의 변화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며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는데, 첫째, 힘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둘째, 분산된 힘이 갈 곳을 잃기 시작했다.
첫째, 힘이 분산되기 시작했다는 말은, 기존의 권력, 권위 중심의 시대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어느 한 명, 소수가 힘을 독점하고 그것을 휘두르는 시대는 소멸되고 있다. 아직까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본인이 마치 힘을 독점한 양 정신을 못 차리는 집단이 눈에 띄긴 하나 그 힘도 곧 분산될 것이다.
둘째, 분산된 힘이 갈 곳을 잃기 시작했다는 말은, 기술의 진보와 함께 힘은 분산되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강력한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렇게 분산된 힘은 방향을 잃고, 또 다른 힘을 찾아가고 있다. 그 예가, 우리는 TV로 대변되는 공영방송의 힘을 잃었지만, 유튜브라는 새로운 힘을 찾고 있다. 유튜브와 기존 TV가 다른 것은 권력의 중심이 몇몇 방송사에서 유튜브라는 전달 매체로 왔다는 것, 그러나 그 유튜브 안에서도 힘의 질서는 존재한다. 어떤 한 명의 유명 유튜브로의 쏠림 현상, 유명한 유튜브의 독점 현상이 이를 말해준다. 그들은 기존 공영 방송의 힘을 가져갔다. 다만 기존과 다른 점은 다양해진 욕구를 반영한다는 것뿐이다. 먹방이나 메이크업 등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뿐 그것의 이면에 있는 힘의 질서는 그대로 닮아있다.
그러나 여전히 시대는 바뀌었고, 우리 개인은 새롭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 다양한 욕구가 존중되는 만큼 우리 개개인이 다양한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많다. 그러나 여전히 힘의 쏠림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힘의 쏠림 현상에는 부작용이 있다. 어느 소수가 힘을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수가 힘을 독점하는 순간, 나머지 다수가 힘을 잃을 수 있다. 소수가 본인의 대단함을 말할 때, 나머지 다수가 그 대단함으로 인해 위축되고 힘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는 그대로 존중받고, 다수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인데, 다수는 눈에 띄는 소수를 닮기 위해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눈에 띈다. 각각은 개인으로 존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보이나, 오직 본인 다운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와 닮은 개인을 갈망한다.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가? 이것이 아무리 자연스러워도 진리는 아니라 생각한다. 만약 내 말처럼 실제로 다수가 소수만 보고 쫓아가는게 현실이라면 사람들이 말하는 '다양성의 시대'는 허구다. 힘의 질서와 그 모양만 바뀌었을 뿐이지, 다양하다고는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소수와 다수는 나뉘지 말아야 한다고. 소수도 다수의 한 명일 뿐이어야지, 소수가 소수가 되는 순간 다양성이 무너지고, 소수와 그 소수를 닮고 싶은 다수만 있을 뿐이다. 내가 잘 났다고 이야기하고 남들이 내가 진짜로 잘났음을 믿는 순간, 다양성은 없다.
TV프로그램 중에 '세바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무려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라고 한다. 어느 한 사람이 15분간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그 시간을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 사람이 말하는 시간이 세상을 바꾼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소수를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 주고 떠 받들려는 의존성은 위험하다. 내가 그 한 두 사람을 대단하다고 부르는 순간, 누군가는 대단하지 않은 인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시대는 위험하다.
그럼 어떤 시대가 안전하다 할 수 있는가.
어느 누구도 대단할 것이 없는 시대. 그 사람의 업적은 그 업적대로 존중 받을 것이지 그것이 마치 정답인양 쫓아가지 않는 시대. 사람의 업적간 우열을 나누기 전에 서로간 존중하는 문화가 깔린 시대.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나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시대. 누군가를 따라가기 전에 본인만의 색깔대로 사는 것이 존중받는 시대. 그런 시대가 진정으로 다양성이 존중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힘이 쏠리고 트렌드가 쏠리고 유행이 생겨나는 시대를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다양성이 존중 받는 시대가 안전한 시대다.
그럼 나는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앞당길 수 있는가
나를 꽃피워야 한다. 나의 존재를 긍정하고 나를 수용해야 한다.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나라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알아야 한다. 내가 나일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숙고해야 하며, 그것이 진정 나임을 알기 위해 끝없이 세상에 부딪치고 도전해야 한다. 나의 목적에 대해서 묻고 남의 목적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그렇게 목적과 목적의 만남이 일어나고, 서로의 목적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힘과 물질의 시대에서 의미와 목적 중심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돈이라는 물질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돈을 넘어서야 한다. 돈이 가진 편리함과 화려함을 넘어 돈의 이면의 가치와 의미를 알아내야 하고 그것을 쫓아야 한다. 맹목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보다 아름다움을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변해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