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than GOOD
'좋은' 조직문화는 뭘까? '좋다'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 조직문화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나 '것 아닌 무언가'에 가져다 쓸 수 있긴 할까?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엄마
좋은 아빠
좋은 컴퓨터
좋은 침대
좋은 책상
좋은 의자
등등
너무나도 많은 '것'과 '것 아닌 무언가'들 앞에 '좋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는 매우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명백하다. '좋은'이라는 정의 자체가 사람마다 다르기에.
어떤 이에게는 예쁘고 날씬한 여자가, 잘생기고 키 큰 남자가 '좋은' 여자 친구이자 남자 친구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귀엽고 애교 많은 여자가, 돈 많고 근육질의 몸을 가진 남자가 '좋은' 여자 친구이자 남자 친구이다. 그래서 그만큼 '좋은'이라는 형용사는 어디에도 가져다가 붙일 수 있지만, 어느 것도 그것을 설명하기에 적절치 않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람들은 '좋은'이란 단어를 좋아할까? 직관적이고 편하기 때문인가? 직관적이고 편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일까? 나는 직관적이고 편한 것을 멀리해야 진짜 '좋은' 조직문화를 찾거나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조직문화라는 것의 성질상 직관적이고 편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문화의 핵심 성질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
조직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단 구성원의 행동, 사건 등이 시간 속에서 겹겹이 쌓여야 한다.
연속성과 지속성이 있어야만 '문화'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문화'라는 것은 어떤 시점에서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예 제도를 생각해 보자. 과거 몇 천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노예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수용 가능했기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렇듯 어느 시점의 무언가를 당시의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좋다, 나쁘다'라는 이분법적 판단은 어떤 현상에 낙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그것이 지속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는 얼마나 많은 '좋았던 것'들이 나중에는 '나쁜 것'들이 되어 버리는가? 그 반대 또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조직 문화라는 것도 지금 당장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럴 수 있으나, 판단해선 안된다.
토스,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등등 소위 업계에서 잘 나가는 회사들의 문화가 '좋다'라고 당연하게 정의 내리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대표님들부터 조직문화를 다루는 전문가까지, 그냥 쉽고 편하게 어떤 회사의 문화를 '좋다, 나쁘다'라고 레이블링 하는 식의 접근은 잘못됐다.
조직문화에 별 관심이 없거나, 조직문화라는 단어를 일 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단순히 조직문화를 즐기거나 비판하는 입장이라면 '좋다, 나쁘다'의 평가가 당연하다. 그러나 회사의 대표라면, 조직문화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좋다, 나쁘다'의 접근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조직문화를 손에 쥔 사람이라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비교적 과학적이고, 신중하며 체계적인 접근 말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다음 글에서 얘기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조직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마저 얘기하겠다. 그럼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실증주의와 해석주의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자. 실증주의 vs 해석주의(Positivism vs Interpretism). 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실증주의는 '세상은 어떤 정해진 원칙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기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하는 것은 그 세상에 감춰진 원칙을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해석주의는 '세상엔 그런 정해진 원칙은 없고,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등의 역동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거나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라고 주장한다.
그럼 조직문화는 위의 두 가지 관점 중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딱 하나를 정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해석주의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한다. 조직문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고, 또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해석주의의 관점을 견지하되, 실증주의적 관점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와중에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스마트폰이 생겨 우리가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관계를 맺는 방식이 엄청나게 바뀌었지만, '소통'이라는 근본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관계 맺는 것을 예나 지금이나 원한다'라는 전제는 실증주의적 관점으로 접근 가능하고,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바뀐 소통 방식은 해석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많은 조직에서 '핵심 가치'나 '미션'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강조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핵심 가치'나 '미션'은 우리 조직의 변하지 않는 것, 실증주의적 관점에서의 정해진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조직문화를 손에 쥔 대표나 담당자는 가장 먼저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첫 번째,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정할 것
두 번째,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이고, 변해야 할 것은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를 정할 것
이 두 가지 '무엇'을 잘하는 방법인 HOW는 아까 잠깐 언급한 과학적이고 신중하며 체계적인 접근과 연관되어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면, 다음은 그 무엇을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나는 그 'How Well'의 핵심은 '과학적, 신중한, 체계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하도록 하고, 이번 글은 마무리 하자.
정리하면,
。문화라는 것의 성질상 '좋은' 조직문화는 세상에 없다.
。이에 좋은 조직문화를 찾으려는 시도부터 잘못되었다(그러니 성공 케이스는 참고만 하되, 그걸 '우리 조직에 입히면 우리 조직도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다).
。조직문화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대표를 포함한 리더십 그리고 조직문화 담당자 등의 전문 인력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의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① 변하는 것 vs 변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정하고,
② 그것을 어떻게 '잘' 지켜나가고, '잘' 변화시킬 것인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위 구체적인 방법론인 'HOW Well'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