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 네트워킹을 한다. 카톡 단톡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그러다가 어떤 패턴을 하나 발견 했다. 어떤 사람은 말미에 '죄송합니다'란 말을 버릇처럼 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란 말을 굳이 해야 될까?
뭐 이런 식이다.
잡혀 있던 일정이 있다. 미리 잡힌 일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참석을 한다고 해놓고 못할 사건이 발생하는 건 정말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미리 잡힌 일정이면 일정일수록 미래 참석 가능성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예측하기 힘든데, 한 달 뒤 일정은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런 일은 종종 아니 매우 빈번히 발생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죄송한 일일까? 아니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 사안일까? 가끔 '죄송합니다'의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남에게 어떤 큰 피해를 끼친다면 물론 죄송한 일이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 구성원이 소수이고, 내가 거기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으며 해당 약속일에 내가 그 역할 수행을 위해 주어진 과제가 있음을 사전에 약속한 상황에서 참석을 못한다면? 죄송하다고 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다수이고, 내가 맡은 역할이 없으며 따라서 내가 할 일이 사전에 약속된 것이 전혀 없다면? 본인의 불참이 죄송하다고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어떤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 우린 제 명에 살기 힘들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오버해서 '죄송합니다'의 당위성을 묻느냐?라고 묻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죄송해하면서 살지 말자는 것이다. 커뮤니티에 속해 있으면 아무래도 거기에 적응하고 싶고 남들이 자신을 커뮤니티 일원으로 생각해 주길 원하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예민하게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진화 심리학에 의하면(응? 갑자기? ㅋㅋ), 우리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식자에 가깝게 진화해 왔다는 근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위축되는 것, 쪼는 것, 즉,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사바나 초원 시대를 살던 때의 이야기이고 우린 이미 사바나 초원보다 훨씬 안전한 도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죄송해하며 살지 말자. 뭐만 해도 죄송하단 말을 로봇처럼 읊조릴 필요가 없다. 실제 죄송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럼 죄송하단 말 대신 어떤 말을 쓸 수 있을까?
후보 1번. 실례합니다!
지하철에서 부대끼면서 타인의 발을 밟았다면? 직접적 피해를 주었으니 '죄송합니다!'가 맞을 것이다. 내리면서 앞사람에게 지나감을 알릴 때면? 죄송합니다 보단 실례합니다! 가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회의 중 화장실을 가야 한다면 죄송합니다 보단 실례합니다가 낫지 않을까?(회의 중 생리 현상을 미리 관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할 말이 없다)
위의 케이스처럼 참석하기로 한 일정에 nobody로 참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실례합니다?! 약간 이상하다. 실례합니다가 이상하면 대안이 있다. '죄송합니다'란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오늘 일정이 생겨 참석을 못합니다. 다음 모임에 꼭 참석하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정도로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순간 오히려 분위기가 더 이상해진다.
후보 2번. 양해를 구합니다!
죽을 짓을 한 것이 아니라면, 양해 정도만 구하면 되지 않을까? 이는 위와 같이 지하철처럼 실시간 현장에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이메일이나 문서에서 쓰는 것이 조금 더 적합할 듯하다. 예를 들어, 이메일로 일정을 변경하는 등의 이벤트가 생겼다. 그럴 땐, "일정을 급하게 변경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를 "이러이러한 사유로 일정을 급하게 변동하게 되었습니다.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로 바꿔보면 어떨까? 크게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구구절절 장황하게 이야기 한 이유는, 피식자의 유전자에 너무 지배당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습관처럼 '죄송합니다'라고 한다면, 죄송하지 않으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당신과 남을 속이는 동시에 자신이 피식자이며 피해자임을 공고히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도 없고 의례 그냥 하는 말인 사람들에겐 위의 내가 드린 말씀이 전혀 무관하니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