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까야 Nov 07. 2023

슬럼프의 재발견

슬럼프를 무시하지 말 것!


슬럼프다. 내가 생각하는 슬럼프의 행동적 정의는 '하기 싫음', '열정 없음' 정도이다. 뭔가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것은 곧이어 죄책감을 유발하고 죄책감으로 하루를 뒤덮으면 매우 좋지 않은 감정으로 잠에 든다. 그 감정은 꿈에 어떤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꿈에서도 나를 괴롭히고 그런 꿈을 밤새 꾸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 감정선 그대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삶을 망치는 패턴이 반복되는 기간을 슬럼프라고 정의했다.


초긍정적 삶을 지향하는 나는 이런 슬럼프가 반복되도록 좌시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여 땀을 흘리거나 자기 계발 책을 보거나 등등으로 부정적 감정을 차단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지난 십 년 넘게 나는 그 짓을 했다. 그런데 그 짓을 십 년 넘게 해오면서 최근 들어 알게 된 것이 있다. 이러한 싸이클 또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슬럼프가 오면 그 슬럼프를 극복해 내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뭔 짓을 해서 슬럼프의 슬자도 내 인생에 개입하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이런 슬럼프는 어김없이 때가 되면 나를 찾아오고 그런 슬럼프를 내 쫓기 위해 검증된 몇 가지 방법을 빠르게 적용하고... 그렇게 슬럼프가 자취를 감추면 행복한 척 살아가다가 다시 슬럼프가 찾아오고 그럼 또다시 회복하기 위해 뭔가를 행하고...


나이가 들어서 일까? 아님 이런 반복되는 패턴에 지쳐서 일까? 한 번도 이런 패턴 자체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당연히 슬럼프라는 것이 오면, 무기력해지거나 열정 없는 시간이 지속되면 당장 쫓아내고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회복 탄력성이라고 믿었고, 나는 제법 회복 탄력성이 높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패턴 자체에 의문이 생긴다. 슬럼프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 맞는가? 혹시 내가 슬럼프를 적으로 생각하기만 한 건 아닐까? 슬럼프라는 것을 통해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생각 뒤에 이어진 것은 또 하나의 깨침이었는데, 나는 여태 한 번도 나의 나약함을 나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기 싫거나 열정 없음'을 나약함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 그것을 나약함이니 그래선 안 되는 행동이라고 정의하였기에 나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없애거나 무시하거나.


그런데 말이야.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요즘 깨닫고 있다. 정말 그럴까? 하기 싫은 감정이나 열정 없음이 꼭 없애야 할 감정이고 무시하거나 피해야 할 것인가? 혹시 이러한 생각이나 감정들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고 나니 나의 감정과 생각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기 싫은가? 왜, 무엇이 하기 싫은가? 그것을 하기 싫다는 말은 정확히 무슨 말인가?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말인가?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너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너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지금 하려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너의 일을 사랑하는지와는 별 개의 이슈인가?


하기 싫다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두려운가? 하기 싫다고 하여 뭔가를 하지 않게 될까 봐 그래서 네가 정체되거나 퇴보할까 봐 두려운 건가? 나아가 너의 가정의 행복에 혹여나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더욱 두려운 건가?


이렇게 내 감정과 생각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하기 싫음, 열정 없음'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상함으로써 생기는 두려움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이다.


두려움을 두려워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 프랭클린 루스벨트 -


나 또한 두려움을 두려워했기에 애써 슬럼프라는 것을 여태 멀리해왔던 것은 아닐까... 확실한 것은 슬럼프라는 것이 오면 빠르게 쫓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단순히 슬럼프라는 것이 나의 인생을 갉아먹기 위해 그러했다고 하기엔 한 번도 슬럼프가 나에게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 본 적이 없다. 슬럼프로 대변되는 두려움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제는 생각을 고쳐먹으려 한다. 이러한 슬럼프가 오면 슬럼프가 나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보겠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떤 감정인지, 그 감정은 나에게 무어라 말하는지, 그 감정이 말하고 있는 메시지는 나에게 진실인지, 진실이든 아니든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등등


슬럼프뿐만 아니라 내 인생,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좋다, 나쁘다' 수준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다. 여태 너무 호불호의 세상, '좋다, 나쁘다, 옳은 것 같다, 그른 것 같다' 등의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왜곡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이제는 인내심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 것이다. 관찰하고 인식하고 조금 더 절제되고 신중하게 세상에 반응할 것이다. 아직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그것이 내 삶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처음 참석한 딸의 가을 운동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