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코로나로 무려 4년 만에 열린 가을 운동회에 부모로서 처음으로 참석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둔 부모로서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참관 수업, 두 번째는 선생님과의 면담. 모두 올해 들어 일어난 일이다.
가을 운동회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다. 우리 때는 그랬다. 운동회와 소풍이 있는 날이면 전 날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설렜다. 90년 대 초등학교를 다닌 나에게 운동회는 아주 의미 있는 행사였다. 아빠, 엄마는 당연하고 이모들, 동네 아줌마까지 참석하는, 1년에 단 한 번 있는 큰 이벤트였다.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은 각자 음식을 준비했고, 운동회 당일엔 시작 최소 1시간 전에는 도착하여 명당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김밥과 양념 통닭은 기본이고 음료수, 초밥, 과일, 떡볶이, 각종 과자 등을 돗자리 한편에 모아두고 한 종목이 끝날 때면 돗자리로 돌아가 엄마가 집어주는 김밥을 먹곤 했다.
(90년대 운동회 사진은 아래 링크에서 참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1224243
이제는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각종 음식과 돗자리, 그리고 동네 아줌마들은 사라졌다. 크지 않은 초등학교 운동장임에도 어른들이 그늘에 넉넉하게 자리 잡을 정도로 공간은 충분했다. 선생님들이 진행했던 운동회는 이젠 운동회를 전문으로 진행하는 업체의 MC가 진행을 맡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각 종목의 준비부터 진행까지 모든 것을 대신해 주셨고, 아이들은 전문가의 진행 덕분에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예전 운동회는 오후 5시가 넘어서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운동회는 오전 9시부터 점심 전까지 딱 3시간 만에 마지막 전 학년 이어달리기까지 완료했다.
처음 참석한 딸의 운동회에서 건강하게 성장한 딸의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지만, 예전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소환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김밥을 싸오셨던 어머니 생각도 났고, 얼굴에 까만 분칠을 하고 까만 스타킹을 신고서 췄던 아프리카 원주민 춤도 생각이 났다. 청군, 백군을 구분하기 위해 둘렀던 머리 띠도 생각이 났고, 박 터뜨리기를 위해 샀던 콩주머니도 생각이 났다.
약 30년이 지났지만 딸 덕분에 30년 전 나를 보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운동회 모습일 것이다.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한국에선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운동회 자체도 보기가 힘들 것 같다. 아마 우리 딸의 자식은 운동회를 실내 체육관 같은 데서 지금 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최대 40-50명 정도 되는 아이들끼리 모여 2-3시간 안에 끝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온라인 공간에서 게임처럼 운동회를 즐길지도 모르겠다.
첫 참석한 딸의 가을 운동회에서 많은 걸 느낀다. 너무나 건강하게 잘 성장해 준 우리 딸에게 감사했고, 마침 일을 쉬고 있어 참석할 수 있는 데 또한 감사했다. 일 때문에 함께 오지 못한 아내에게 현장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예전 운동회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에게 아직 3번의 운동회가 남았다는 사실이 반갑다. 남은 3번의 운동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