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브로 시작하여 감사함으로 끝나는 이상한 글
지난 일요일 아침, 아이브 IVE 장원영의 사진을 들이밀더니,
"아빠, 나 이 머리 할래!"
단호했다.
"어? 언제 하러 갈래...?"
내일 학교 갔다 오면 3시 좀 넘는 데 그때 가자.
"우리 내일 그 시간에 치과 예약 되어 있는데?"
"치과 다녀와서 바로 가면 돼!"
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에게 말했다.
"아빠, 오늘 학교 갔다 치과 갔다가 머리 하러 가는 거야~ 알지?"
초3치곤 빈틈이 없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치과를 먼저 찾았다. 머리 스타일에 대한 관심에 비해 치아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당장 치료해야 할 치아가 2개나 되었다. 의사가 말하길 조금만 더 놔두면 신경을 건드릴 수 있기에 치료가 빠르면 빠를수록 아이가 덜 아프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딸이 벌떡 일어났다. 충격을 받은 줄 알았으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아빠, 오늘은 안 돼! 머리 하러 가야지!"
머릿속엔 이미 장원영 머리를 한 자신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렇게 후다닥 충치가 있음만 확인하고 동네 미용실로 갔다. 이 미장원에선 무려 매직파마를 몇 번이나 했던지라 원장님과도 제법 잘 안다.
도착하자마자 내 폰을 줄라고 하더니 얼마 전 찍어 놓은 장원영 사진을 보여준다. 원장님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머리를 자르는 내내 원장님과 소통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원장님, 아직 머리가 좀 긴 거 같아요."
"옆에 조금 더 잘라야 할 것 같아요."
"이 정도 길이도 좋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잘라보시겠어요?"
"아빠! 나 머리 자르는 거 봐야지!"
길이를 맞추고 고데기로 앞머리에 그루빙을 하고 마무리를 해주셨다.
머리가 거의 끝날 즈음에 딸이 원장님께 하는 마지막 멘트에 놀랐다.
"지난번에 앞머리 자를 땐 원장님 말고 다른 분이 잘라 주셨는데 별로였어요. 오늘은 원장님이 해주셔서 마음에 들어요!"
정확한 워딩은 아니었을 텐데 대략 저런 유사한 말을 전했다. 원장님이 흠칫 놀라시더니 함박웃음을 지으시곤,
"앞머리는 돈 안 받아~ 그냥 가요~"
그렇게 앞머리를 자르고 나온 따님은 나에게 몇 번이 곤 예쁜지 묻는다.
예쁘다고 대 여섯 번 듣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곧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아갈 기세다.
오늘은 머리를 자르고 처음 학교를 가는 날이다.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에게 평소 관심 있는 남자 친구들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이런 쪽 경험은 딸 보다 많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팁을 하나 줬다.
"오늘 학교 가거든 너의 머리를 보고 이상하다고 놀리는 남자 친구는 너에게 관심이 있거나 좋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부끄러운 척하더니 슬며시 보일 듯 안 보일 듯 웃음을 흘리곤 학교를 갔다.
학교를 다녀와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평소 딸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몇 번 오르내린 이름이 등장했다.
자주 오르내린 이름은 두 명이었는데 머리가 이상하다며 놀린 친구는 그 두 명을 포함한 세 명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머지 한 친구의 이름은 예전에 딸이 '귀엽다'라고 언급한 친구였다.
여러 번 놀랐다.
미용실 원장님과의 소통 실력과 더불어 립서비스까지 하는 딸아이를 보고 한 번 놀랬고, 무심코 던진 팁으로 거의 정확하게 딸아이에게 관심 있는 남자친구를 골라낸 나의 죽지 않은 감각에 한 번 더 놀랬다.
빠르게 커가는 딸아이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매우 기특하고 사랑스럽지만 또 한 편으로는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 아쉽다.
그리고 나의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르면서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모님이 떠올랐고, 지금의 나와 어렸을 적 나의 부모님이 오버랩되어 기분이 묘했다.
딸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앞으로 오지 않을 시간이라 생각하니 더욱더 소중하고 귀하다.
한 번 가면 절대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 더욱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깨침까지 얻으니 더더욱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감사하게만 세상을 대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열심히 감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