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 200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햇수로 딱 22년 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부산의 작은 동네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내리며 학창 시절, 시간과 공간을 나눴던 친구들. 개 중엔 학창 시절 땐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은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만 기억을 나눴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반가운 친구들.
나는 할 것이 공부 밖에 없던 시절, 공부를 하기가 참 싫었다.
학교에 있는 것 자체가 싫었고 재미가 없었다. 나의 10대와 20대는 끝이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30대는 그나마 아내와 딸이라는 등불이 내 삶을 비춰주었지만, 이 또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무엇인지 모르는 공허함이 기름때 마냥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고 하였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렇게 30대는 쏜살같이 무심하게 지나갔다. 그나마 만족스러운 것은 딱 하나, 딸이다. 예쁘고 명랑하게 자라고 있는 내 딸을 보면 공허한 마음 한 구석이 꽉 찬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가족이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게 마련이다.
공허하게 느껴지는 삶이 이어질 때 나는 항상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남들 다하는 공부란 걸 안 해서 그런가? 기본이 없어서 그런가? 학교를 그렇게 부정해 놓고 삶의 기본기가 학창 시절 '공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무언가 뚜렷한 이유를 찾고 싶었는지 내 인생에서 가장 한심한 시절을 뒤적였다. 공부는 물론 하지 않았고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했던 10대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그렇게 10대의 내 학창 시절은 공허한 삶이라는 중범죄의 용의 선상에 올랐다.
지난 22년 동안 매번 만나는 친구들만 만났다. 캄캄하고 침침한 곳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몇 명은 더 어둡고 침침한 곳으로 갔고, 몇 명은 더 밝고 상쾌한 곳으로 갔을 것이다. 나 또한 예전 학창 시절, 망나니 같던 시절에 비해 매우 밝은 곳으로 왔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 친구들을 만나는 데 22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학창 시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완전히 달랐다. 비교적 밝고 따뜻한 곳에 서 있었다. 어른들의 하나 틀리지 않는 지혜로운 말들, "기술 배워라, 공부 열심히 해라, 대학 가서 놀아도 늦지 않다" 그들은 이러한 격언을 충실히 따랐다.
그들은 여전히 '잘 되어 보였다.' 전교 1,2등을 다투던 두 명 중 하나는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변호사를 하고 있었고, 한 명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투자사에 있다고 한다. 그 외 다른 3명은 각각 변호사, 사장, OO일보 기자가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흠칫 놀라 보였다. 학창 시절 자신들의 기억에 있던 나는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내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눈을 거의 세모로 뜨고 나를 몇 번이고 쳐다보는 것을 보면 과거 기억과 현재의 내가 많이 달라 보이긴 한가 보다.
친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OO일보 기자라는 친구는 기자답게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억을 하나하나 소환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아마 기자를 안 했다면 챗GPT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기억을 하나하나 소환하여 깔아 놓고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나는 큰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내가 생각하던 내 학창 시절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캄캄하고 침침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나의 학창 시절 기억과 감정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제법 따뜻하게 느껴졌다. 공허함이라는 중범죄의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했던 내 10대 시절이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22년 만에 처음 했다. 생각보다 따뜻했다. 가끔은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22년 만에 만난 친구들을 통해 나의 과거를 다시 쓰는, 내 인생에서 매우 역사적인 사건을 만났다. 스무 살 이후 약 20년을 눌어붙어 있던 그 한 생각의 끝자락을 조금이나마 손톱으로 긁어낸 것이다.
나는 여태 지나간 과거는 후회하지 말자. 후회하는 만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고 생각하며 애써 과거를 무시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친구들을 통해 내가 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내 과거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보려고 한다. 과거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든 어떤 기억과 감정이 떠올라 나를 괴롭게 한다면 그것이 거기 있음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여태 싸워왔던 나의 과거와 화해를 해보려고 한다. 억지로 피해왔던 나의 과거와 화해하는 것이 새로운 현재,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환골탈태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나의 과거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실은 캄캄하고 침침했던 내 학창 시절은 없었다는 것, 단지 그렇게 나의 과거를 어두운 색으로 칠하고 있는 현재의 나만 있다는 것,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미래를 망치고 있다는 것 등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미래 창조의 비밀은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지금의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22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정말 큰 선물을 받았다. 세상은 항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항상 더 큰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