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최대의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과 함께 HR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상주 프로젝트라 매일 그 회사로 출퇴근을 하는데요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적응이 될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더 피곤해진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일까요? ㅎ 그래도 처음 보단 많이 나아졌어요. 몇 번의 시도 끝에 최적화된 루트를 찾았어요. 처음엔 최소 1시간 30분은 걸렸으나 최적화된 루트로는 1시간 10분에서 20분 정도 걸리니 말이죠. 출퇴근 시간 10~20분은 크죠 ㅎ
출퇴근도 출퇴근이지만 보안이 워낙 중요한 회사다 보니 이 또한 프로젝트를 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카메라 보안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들어가는 등의 실수를 두 번 하게 되면 출입 정지 조치가 취해지니,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보안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 같은 외주 업체에는 더욱 중요한 사안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한 두 번 실수를 하게 되고, 저 또한 초반에 같은 실수를 두 번하여 출입이 중지될 뻔하였네요. 다행히 출입은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제 한 번만 더 같은 실수를 하면 완전 '끝'임을 확인하였어요. 무서워요 ㄷㄷ
대기업 HRD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요? 모든 대기업이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이라는 특성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고, 그 공통점이 대기업이라는 큰 조직의 생리 상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면, 어느 대기업이든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을 텐데요.
모든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통 사실은 뭐가 있을까요?
먼저 관료적 조직 체제입니다. 팀이라는 가장 하위 조직에서 시작되어 팀이 모여 부서나 실, 부서나 실이 모여 그 상위 조직을 이루고 있죠. 그리고 산업 자체가 다르면 하나의 계열사를 이뤄서 독립된 회사처럼 운영이 되고요. 그 계열사들이 모여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는 형태를 말합니다.
조직이 있으면 그 조직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상위 그룹에는 최상위 리더가 있고, 그룹별로 그 그룹에서의 최고 리더가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의 구조적 특성은 모든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입니다. 어느 대기업도 이런 구조에서 벗어날 수가 없죠.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대기업을 생각해 보면 여러 사실들을 추론할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최상위 조직의 리더의 성향에 따라 조직의 문화나 일하는 방식 등이 결정된다'라는 강력한 추론이 하나 있습니다.
최상위 조직의 리더가 원하는 바가 하위 조직의 리더에게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오랜 세월 유교적 전통을 따랐던 나라, 군대와 같이 지배-피지배 구조에 익숙한 사회는 특히나 이런 경향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러한 한국 문화의 특수성을 연구한 책도 있죠.
한국에선 리더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어느 정도로 큰 지를 다른 나라나 사회와 비교하기는 힘들겠지만, 우리 모두 학교와 회사 생활을 거치면서 피부로 실감한 부분이죠. 학교에선 선생님의 영향력, 회사에서는 회사 대표나 그룹의 장이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그들이 사람을, 조직을 어떻게 정의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생김새가 많이 달라집니다.
아래의 예를 볼까요?
"사람,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반드시 관리자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 조직은 실패할 것이다"
라는 신념을 가진 리더가 있는 조직
"사람,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반드시 스스로 또는 상호 협의 하에 창조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조직은 성공하 것이다"
라는 신념을 가진 리더가 있는 조직의 얼굴은 어떻게 다를까요?
전자의 리더가 있는 또는 아주 오랜 기간 이러한 리더가 조직을 이끌어 왔다면, 강한 리더십 체제로 사람과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관리만 잘한다면 조직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의 믿음과 행동일 텐데요. "관리자에 의해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 철저히 관리된다면 우리 조직은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진 구성원이 하는 행동과 "관리자가 아닌 나와 동료가 스스로 나와 우리의 결과물을 함께 창조한다면 우리는 성공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진 구성원의 행동이 참 많이 다를 텐데요. 이러한 믿음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결과물은 어떻게 다를까요? 무엇이 조직의 생존과 번영에 더욱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효과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엔 참 힘든 질문인 것 같습니다.
대기업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관료적 조직 체제 상 리더의 역할이 사람과 조직을 빈틈없이 관리하는 데 그 비중이 클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 조직에서는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는 것보다 실패하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고요.
이러한 관점에서 대기업의 HR을 살펴보면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HR이 크게 HRM(Human Resource Management) &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로 나눠져 있는 이유 또한 이와 연관이 있죠. 대기업일수록 M의 역할과 비중이 크고 높습니다. 그래서 대기업 프로젝트에서 덩어리가 큰 것은 대부분이 M 프로젝트이지요. D는 프로젝트라고 할만하기엔 덩어리가 작거나 연속성이 M 보단 적을 수밖에 없기에 정확히 말하면 D에서는 프로젝트라고 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HR에서 큰 컨설팅 기업이 모두 M, 즉, 인력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를 컨설팅하는 회사라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직무교육체계 수립'이라는 프로젝트가 딱 HRD처럼 보이는 HRM 프로젝트이지요. 인재를 개발하는 것 자체 이전에 개발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체제를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인데요. 핵심 성공 요인은 제도와 실행 간의 연결성입니다. 현업에 와닿지 않은 제도를 만든다면 없는 것만 못하죠. 잘못된 메시지로 구성원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이런 것인데요. 제도를 만드는 데만 집중하고 이것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제도와 실행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죠.
제 경험상 실행률을 높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실행할 사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를 만든 사람이 실행을 하는 것입니다. 즉, 컨설팅과 실행 그리고 운영의 주체가 동일해야 하는데요. 대기업이라고 하면 이런 사람들이 득실득실할 것 같지만 실상은 또 안 그래요. 모든 걸 두루두루 다 할 수 있지만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죠. 제가 현재 진행 중인 기업 또한 그래 보입니다. HR 인력 대부분이 현업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우연히 이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고요. 이 분들의 머릿속은 위에서 말씀드린 대기업 리더십의 전형적인 행태가 배어 있는 듯해요.
"어떻게 하면 크게 실수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서 변화한 것처럼 보이게 할까?"라는 생각이 강한 듯해요. 그들이 이러한 믿음과 행동을 하는 데는 그 사람의 개인적 특성도 있겠지만, 환경의 영향이 더욱 크겠죠.
정리하면,
대기업 프로젝트는 최상위 리더의 성향이나 니즈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료제의 특성상 안정성이 높고, 안정을 추구하려는 구성원과 리더의 비중이 높습니다. 이에 무리하여 성공하려는 것보다 실패를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큰 이득을 얻기보단 작은 손해를 피하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느 정도 변화는 필요하나 근간을 흔드는 변화 등은 기피하죠. 자연스럽게 겉만 핥는 프로젝트가 많고 그러다 보니 중복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거 예전에 했던 것 같은데 이걸 또 하려는 이유가 뭐죠?" "이건 지난번에 OO과 어떻게 다르죠?" 등등의 질문이 끊이질 않죠.
대기업의 HR은 대기업이라는 환경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냉정하게 말해 환경이 다른 기업에선 배울 것이 많이 없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대기업, 1등 기업이라고 해서 따라가선 안 되는 데 수많은 1등 아닌 기업들은 따라가길 원하죠. 1등은 뭐가 다르겠지...? 1등이 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등등의 생각으로 말이죠. 참 위험한 사고방식이죠. 그럼에도 1등 기업만의 특수성이 있고 배울 점이 많은 기업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과거의 1등 대기업이라는 허영으로만 먹고사는 그 1등 기업과 그 1등 기업의 허영만 쫓으려는 행태인데요. 이는 정말 경계해야 하죠.
이상 출퇴근 3시간씩 하면서 열심히 하는 척하는 프로젝트 단상을 공유드려보았습니다. 다음엔 조금 더 건설적이고 도움 되는 이야기를 가져와야겠네요 ㅎ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