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숨 좀 돌릴 타이밍이다
괜찮다 거기 잠깐 널브러져 있는다고 영영 못 일어나는 거 아니다
세상 안 끝난다. 널브러져 있어도 된다. 괜찮다. 인생이 바닥 같은가? 그렇게 느껴도 된다. 전혀 죄가 아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시기를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겪을 것이다. 당신만 초라해 보이는가? 당연하다. 어느 누구도 그런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진 적이 있거나 중이거나 그럴 것이다. 지금의 당신처럼 말이다.
20대 초반의 어떤 사내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는 여태 그냥저냥 살아왔다. 학교 생활을 할 때도 그럭저럭 중간은 했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럭저럭 중간은 했다. 본인이 한 만큼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 집안도 크게 풍요롭진 않았지만 먹고 살 정도였고, 당시 주변의 친구들 보단 부유한 편이어 무리 중에서도 큰 노력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제법 언변이 좋아 사람들에게는 항상 이야기꾼으로 통했고, 같은 말을 해도 이 친구가 하면 맛깔이 났다. 말재주로 사람들을 홀리기를 잘하여 군대든 해외든 어디에 있든 제법 괜찮게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시련이 왔다. 큰 걱정 없이 살아온 그 친구에게 시련은 다름 아닌 '실연'이었다. 평생 그렇게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사는 것이 가능한 줄 알고 살던 친구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이별 통보, 그 이별 통보 한 방에 그 친구는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당신은 물론 실연과 같은 연애 타령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정서적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매한가지 일 것이다. 그 친구에겐 그럭저럭인 편안했던 삶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쓰러졌다.
그리고 한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마침 지하 단칸방에 살던 그 친구는 그렇게 계속 쓰러져 있었다. 눈을 뜨면 괴로워 눈을 뜨지 못했고 눈을 떠 있는 시간은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술이나 담배에 중독되길 선택했다. 학교를 다녔던 친구는 학교 수업 시간 외에는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방에 틀어박혀 TV 프로그램, 영화, 드라마 등을 보며 괴로움을 피했다. 24시간 중에 자는 시간과 학교 수업 듣는 시간 외에는 모두 정신을 산란케 하는 활동만 했다. 그 활동만이 오직 괴로움을 잊게 만드는 유일한 도피처였기 때문이다.
바닥이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때는 일어날 힘도, 의지도 없다. 아는 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덜 괴롭다는 사실 하나. 사람에 따라 개인차라고 하면 널브러져 있는 시간의 간격이다. 어떤 이는 널브러져 있는 시간이 짧은 반면에 어떤 이는 길다. 이걸 전문 용어로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더라. 그런 거 필요 없다. 그냥 쓰러졌다 일어나는데 걸리는 시간, 코피 터졌다가 휴지로 닦는 시간. 이것이 얼마나 짧은가 긴가의 개념이다. 사회는 항상 그 시간이 짧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복 탄력성이 좋은 놈이 성공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세상엔 정말 무책임한 놈들 천지다. 회복 탄력성이 좋은 것의 기준도 없이 그냥 좋아 보이는 건 무조건 옳다고 하는 놈들이 소위 말해 입을 좀 턴다며 아무 말이나 해댄다. 널브러져 있는 사람한테 이 말해준다고 그 친구가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그 친구에겐 그 말뿐만 아니라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으며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널브러져 있는 친구의 상태는 대략 이렇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귀찮고 모든 것이 괴로움을 연상시키며 실제로 괴롭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냥 옆에 가지 마라. 힘내라는 말 따윈 필요 없다. 안 들린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에 힘이 날 정도로 사람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당신이 널브러져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걸 알아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널브러져 있어라. 안 일어나도 된다. 쪽팔릴 것도 없다. 정말 괜찮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널브러져 있어도 된다. 그렇게 널브러져 있다고 굶어 죽지 않는다. 아무리 괴로워도 밥은 먹고 똥은 싼다. 왜 그런 줄 아는가? 괴로운 이유가 살고 싶기 때문이다. 죽고 싶었다면 그렇게 널브러져 있지 않는다. 정말 죽고 싶다면 당신 여기 없다. 우리가 왜 그렇게 죽지도 않고 그렇게 널브러져서 슬픔에 겨워 꺼이꺼이 목놓아 울기도 하고 술을 진탕 마시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노래를 불러대는 줄 아는가?
살고 싶어서다. 당신이 만약 지금 널브러져 있다면 걱정 안 해도 된다. 살고 싶어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껏 널브러져 있어라. 지금은 뭔가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어라.
당신이 지금 인생의 나락에 떨어져 널브러져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할 힘도 하고 싶은 의지도 없다면?
괜찮다. 그대로 있어라. 다음은 다음 단계에 생각하자.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