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어떻게 우리를 조련하는가

파란 약 줄까? 빨간약 줄까?

by 대충철저

두려움은 필요하다. 두려움은 수백 만년에 걸쳐 축적된 생존 본능의 하나로 소위 말하는 장기 유전형질에 박혀서 우리에게 전달될 정도로 필수적인 것이다. 두려움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머드나 사자 등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멸종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두려움은 인류에게 아주 유용한 생존 도구이기에 필요하다.


현대의 두려움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도시 생활을 하는 인류를 보자. 도시 생활에서는 인류의 목숨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사자나 매머드가 없다. 사자와 매머드 크기 정도의 움직이는 물체는 자동차가 유일하다. 자연재해나 전쟁을 제외하고는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것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도시 생활에서 인간의 두려움은 완전히 변형되었다. 정말로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두려움은 거의 사라지고, 심리적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다시 말해, 사자나 매머드에 의해 우리는 '육체적'으로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심리적 죽음'으로 대체되었다.


* 육체적 두려움은 보편적이다. 아래 영상은 이구아나 한 마리가 뱀 수 십 마리가 달려드는 한가운데서 육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 온몸으로 극복해내는 영상이다. BBC의 명작 Planet Earth ll 중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영상이니 꼭 한 번 보시길.


https://youtu.be/Rv9hn4IGofMhttps://youtu.be/Rv9hn4IGofM


심리적 죽음은 무엇인가?


심리적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간단하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짧게 이야기해보면, '죽음'은 '없어지는 것'이며,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없어지는 것'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두렵다. 정리하면, 사람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게 되면 나의 존재는 없어질 수 있다. 내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모르기에 더욱 두렵다'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럼 심리적 죽음은 무엇일까? 육체는 있다. 그러나 나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도시 생활로 옮겨오면서 사람들은 나의 육체적 죽음만큼 나의 존재감이 무리에서 없어지는 것 자체를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단적인 예는 이런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했다.' '그 여자가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택했다.' '취업에 여러 번 낙방하였다.' 등등 이러한 예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육체는 멀쩡해도 내가 누군가의 세계로부터 사라지는 경험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두려움은 환영이다. 실제 사자나 매머드의 위협처럼 눈 앞에 있는 두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만들어 낸 두려움이다. 즉, 이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을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려움은 거짓이자 환영이다.


문제는 실질적 두려움이 거의 없는 현대 사회는 이러한 거짓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아래와 같은 말을 마치 반드시 따라야 할 명제처럼 말해왔다(물론 요즘은 덜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을 가야 한다. 대기업을 가면 비슷하게 두려움을 관리한 사람끼리 만나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은 적당한 때에 해야 하고 적당한 때가 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 아이를 운 좋게 적당한 때에 낳았다면 이제 집 넓이를 넓혀야 한다. 아이가 우리와 비슷한 정도로 두려움을 관리할 수 있으려면 아이 교육에 신경 써야 한다. 아이의 교육과 더불어 노후 준비도 해야 한다. 노후 준비에는 부동산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자산이 유용하다. 부동산만 제대로 해놓으면 노후 걱정 안 해도 된다. 등등


이러한 명제는 자동적으로 조작된 두려움을 만들어 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좋은 대학 가지 않으면 너는 없어진다. 대기업에 가지 못하면 너는 없어진다. 비슷한 사람 만나 결혼하지 못하면 너는 없어진다 등등


우리는 실질적인 두려움은 없는 안전한 곳에 살지만 실질적 두려움만큼 위협이 되는 거짓 두려움에 도출되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은 너무나 선명하여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이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성적을 비관하여, 직장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는 이러한 사회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이며 때론 동조자였다. 이 시스템을 충실히 따르진 않았지만 적당히 따랐기에 실제론 별 볼일 없는 나란 존재가 상품이 되어 가격이 매겨졌다. 나는 그 가격에 맞춰 여태 굶어 죽지 않고 살아왔으니 수혜자다. 한편으로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노예가 되어 나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올 수밖에 없었으니 피해자이다. 그리고 때론 시스템에서 일찌감치 이탈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했으니 동조자이다. 이제는 이러한 나의 삶이 진정으로 위선의 삶이었음을 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이 말에 동의를 한다면 이제는 선택을 할 때가 왔다. 거짓된 두려움을 개인에게 주입하고, 거짓된 두려움임을 알면서도 거기에 충실히 따라가며 살 것인지, 아니면 이제 거짓된 두려움을 완전히 탈피하여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를 말이다. 매트릭스에서 파란 알약을 먹을지 빨간 알약을 먹을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거짓된 두려움 중에 가장 선명하게 살아 나의 숨통을 옥죄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힘, 바로 자본주의 시대의 '돈'의 힘이다. 나는 좋은 대학을 안 나와도 되고 대기업을 안 가도 된다. 대기업을 다니며 비슷한 사람과 결혼을 하여 적당한 때에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려면 '돈'은 있어야 한다. 돈이 없다면 실질적인 두려움에 부딪치는 것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거짓된 두려움 중에 유일한 실질적 두려움이 바로 이 '돈'이라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실제를 깨달은 사람들의 삶을 보라. 오히려 매트릭스에서 거짓의 삶을 선택한 싸이퍼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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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스테이크를 먹고살고 싶다. 그러나 스테이크만 먹고살고 싶진 않다. 길은 두 가지이다. '돈'이 있든 없든 돈의 현대적 가치를 초월해서 사는 것과 '돈'을 초월할 때까지 돈을 모으는 것.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위의 모든 이야기가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다만, 해결책을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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