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132일

담배 없어도 살만하다

by 대충철저

담배를 제법 어린 나이에 배웠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밝히면 아마 아니 분명히 양아치라고 욕을 할 것이다. 욕을 들어 먹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실로 부끄러워 말할 수가 없다. 30대 후반인 나는 20년을 넘게 담배를 피워왔다. 올해 8월 9일부터 담배를 안 피웠고 오늘로 딱 132일이 되었다. 여태 내가 담배를 피우고 나서 담배를 소위 끊은 기간 중 가장 오래되었다. 약 5년 전에 3개월 정도 담배를 끊은 적이 있다. 3개월이 최장 기간이었고, 그때 금연을 실패하고 영영 끊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다 담배를 끊은 지 4개월이 조금 넘었다.


담배 이거 보통 놈이 아니다

담배를 20년 넘게 피워오다가 하루아침에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지만, 거의 대부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니코틴이라는 화학 물질에 20년 넘게 길들여 온 데다 수 만 번 넘게 지속되어온 담배에 불을 붙이고 빨아대는 그 행동 습관을 단 박에 끊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담배와 얽히고설킨 내 감정들도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으니 끊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나는 담배를 아주 좋아했지만, 동시에 담배가 아주 싫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도 맛있게 피워대던 담배가 어느 순간 끔찍이 싫을 때가 있었다. 담배가 싫었다기 보단 담배를 피워대는 내가, 담배 냄새에 찌든 내가, 20여 년간 담배에 질질 끌려온 내가 싫었다. 정말 안 피우고 싶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딱 한 대만 피우자며, 담배를 사서 정말 한 대만 피우고 버린 경우도 허다하다. 여태 피운 담배값을 계산해보니 외제차 한 대 값이다. 그렇게 담배와 이별하는 게 힘들었다.


올해 퇴사를 했고 새로운 도전을 하던 차에, 담배가 눈에 띄었다. 모든 변하는 것 와중에 굳건히 도 내 삶을 갉아먹던 담배라는 놈을 떠나보내야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것 같았다. 그렇게 담배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보건소를 갔다. 보건소를 가니 약을 처방해 준다. 챔픽스라는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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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를 가서 약을 받는 행동은 실제 금연약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건소를 가는 행위 자체부터 금연이 시작되는 효과가 있다. 버스를 타든 걸어서 가든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어 보건소를 가서 금연상담사와 면담을 하고, 약을 처방받는 행위 자체가 매우 의미가 있고, 금연에 도움이 되는 행위이다. 혹시 담배를 끊으려는 마음이 있는 분들에게는 보건소에 가는 것을 권한다. 참고로 저 약은 보건소뿐만 아니라 지정된 병원에 가도 처방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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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면 확실히 흡연 욕구가 줄어든다. 어느 정도 견딜만하다. 그러나 약 하나 먹는다고 내 의지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약은 단지 거들뿐. 약을 받쳐주는 것이 내 의지이다. 약에만 의존하면 금연에 실패한다. 예전에 내가 저 약을 먹고도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약만 먹으면 돼"라고 마음먹으면 얼마 가지 못한다. 무엇보다 담배를 이번에 반드시 끊어내겠다는 내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위에서 보듯이 약은 파란색 알약이다. 위에 써놓은 숫자는 날짜이다. 약을 먹다 보니 하루씩 거르는 날이 생겼고 당분간은 혹시나 다시 피울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날짜로 표시해 놓고 매일 챙겨 먹었다. 지금은 약도 먹지 않는다.


보건소에 가면 약만 주는 것이 아니다. 입을 헹구라고 가글도 주고, 민트 성분의 사탕도 준다. 그리고 금연에 도움되는 가이드 같은 것을 주는데 나는 한 동안 이 조그만 책자를 자주 들여다봤다. 그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매일 체크할 수 있는 체크표였는데, 나는 아래와 같이 날짜를 써놓고 매일 동그라미를 치며 표시를 했다. 나의 성과를 기록으로 남기니 확실히 더 뿌듯했고, 금연할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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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알겠지만 오늘이 딱 132일째이다. 이렇게 기록을 해놓고 볼 때도 뿌듯하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 동그라미 칠 때도 매우 뿌듯하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하루를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혹시나 보건소에서 저 책자를 받는다면 반드시 저 책자를 나처럼 활용해보셨으면 한다.


추가로 나는 많이 걸었고 뛰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걷고 뛰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꾸준히 걷고 뛰었다. 당분간 술도 자제했다. 그러나 평생 술을 먹지 않을 것은 아니기에 술을 먹으면서도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일주일 정도 술을 먹지 않고, 술을 먹었다. 술을 먹으면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였고, 나중에는 술을 먹어도 담배 생각이 안 났다.


이제 겨우 132일 안 펴놓고 뭔 자랑질이냐고? 맞다. 주변에 보면 5년 끊었다가도 다시 피우는 사람도 있다. 그 형이 하는 말이, 5년 끊고 다시 폈는데도 담배가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나도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 누가 담배 하나 주면 정말 맛있게 피울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게 끝이다. 알고 있다. 그 한 대가 분명 끝내준다는 것을. 그러나 그 한 대를 피우기 위해 평생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직도 와이프와 신나게 싸우면 가장 먼저 담배 생각부터 난다. 싸웠다는 핑계로 한 대 피울 수 있지만 아직까진 다행히 피운 적이 없다.


어렵게 담배와 이별한 만큼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었으면 한다. 담배 없으니 좋긴 하다. 피로 해소가 빠르고, 뛰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가볍고 활력 있다. 감정 상태에 있어서도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짜증이 예전보다 훨씬 덜하고 사람들을 대하는데도 한 층 여유가 생겼다. 술 먹고 다음 날 목이 아프거나 시커먼 가래가 나오지 않은지 제법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관계를 할 때 건강해졌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이 좋은 걸 왜 이제 끊었을까 하기엔 담배를 너무 즐겼다. 이제는 새로운 삶이다. 이 삶도 마음껏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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