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허공에 발길질 스토리
스타트업?! 세상엔 온통 천재들이 드글거리는 것 같았다. 20대 억만장자가 작년 보다 6배가 늘었다느니, AI로 너도나도 부자가 되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두렵다. 나는 혹시나 이렇게 빨리 변하는 세상에 도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하고 있지도 않고, 간간히 젓고 있는 노의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이런 두려움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스트레스받으니 AI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나의 지인과 같이 말이다.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다가는 정말 도태될 것 같아 더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수 십 년 된 고민을 다시 꺼내 들어 이리저리 돌려 보기 시작했다.
나는 마흔이 넘었다.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태 안 흔들린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비틀거리며 살아왔다. 방황했고 여전히 방황 중이다. 그 방황의 근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였다. 나는 누구인지 알기 힘들었고, 누구인지 모르니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알기도 요원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살아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나라는 존재 아닌가"
흔들리는 것도 '나'이고, 흔들린다고 느끼는 것도 '나'이다.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것도 '나'이고 흔들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이다.
나의 여태 문제는 흔들리는 내가 아니었다. 흔들리고 있다고 느끼는 '나'와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나'와의 지속되는 충돌이었다. 그것도 '나'이고 이것도 '나'인데 나는 내 안에서 서로 다른 나를 분리해 놓고 싸우게 만들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을 알고 나니 그 모든 나를 받아들일 일만 남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평온해졌고, 행동이 쉬워졌다. 그렇게 나는 20년 간 피우던 담배와 술을 하루아침에 끊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나의 하루를 마비시키던 중독 물질과 생각들을 떠나보내고 나니 여태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걷어내고 닦아내는 중이다.
켜켜이 쌓은 묵은 '나'가 사라지고 나니 새로운 '나'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의 내가 묻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과거의 나는 대부분 당시의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방향이 목적지였다면 최근의 나는 어떻게 하면 괴로웠던 나의 삶을 통해 남을 도울까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의 질문은 완전히 바뀐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나의 경험을 통해 남을 도울 수 있을까?"
그렇게 질문을 바꾸고 나니 몇 가지 할 일들이 생겼다. 유쾌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웃는 것,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것 등등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나의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이어져 조금 더 큰 질문에 다다랐다. "나의 일로 세상을 도울 수 있을까?"
나는 소위 말하는 HR영역에 몸담고 있다. 이런저런 일들을 해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현상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와 우리에게 대입하여 인사이트를 끌어내는 일, 그것을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남들이 그것을 함께 볼 수 있도록 대화하는 일 등이다. 전문 영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추상적이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잘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이런 일로 나는 세상을 도울 수 있을까?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으로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세상이라는 곳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여태 나만 알고 나의 고통과 쾌락을 위해 살던 삶에서 나를 넘어 남에게 뻗어나가는 진짜 삶으로의 첫 발을. 이제는 두 번 다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단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나이는 중요치 않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출발선이라면 그곳이 나의 자리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는 나의 할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나의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